Ma propre pensée

동네 한 바퀴, Parc de Sceaux

yurinamu 2015. 4. 23. 07:17





집주인 부부가 늘 봄만 되면 물어보는 게 있었으니, 쏘 공원 다녀왔냐는 질문이었다.

베르사유궁 정원으로 유명한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가 설계했다고.  

꽃 필 때 가장 예쁘니 꼭!! 가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었다.

4-5월은 우리 동네가 가장 예뻐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봄철은 항상 논문의 계절이었고 

늘 시험까지 겹쳐 가장 바쁜 시기였다.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아

오며가며 집 앞에 흩날리는 벚꽃잎과 옹기종기 모여 핀 수선화를 구경하는 것에 그쳤다. 


지금과 같은 bnf 노예시기에는 

유일하게 기분 좋은 날이 바로, 일요일 장을 보러가는 길이다. 

가는 길이 말 그대로 꽃길이다. 


고개를 들면 쨍한 맑은 하늘에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시선이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정말이지 온몸으로 봄을 말하는 목련, 벚꽃, 라일락, 산수유 나무가 있다. 

흐드러지게 만개하다 못해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눈처럼 떨어지는 꽃잎에 정신 못 차린다.(밑에서 맞고 있다)

발 언저리에도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 알록달록 피어있음에 절로 신이 난다.

이맘 때쯤 되면 늘 조경에 박차를 가하는 앙토니 시의 노력에 감사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분발하고 있다. 

오늘만을 기다린듯 아주 열심히, 골고루도 심고 뽑고 심고 뽑는다. 



날씨가 너무 좋았던 지난 주 

평일이라 어김없이 bnf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RER 차창 밖의 풍경이 말도 안 되게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서 중간에 내렸다. 

벚꽃 축제도 하는 쏘 공원을 지척에 두고

이렇게 좋은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Parc de Sceaux 역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공원 가는데 아이폰 꺼내서 구글맵 가동

누군가 친절하게 길을 찾냐고 물으면 창피할 것이니 

얼른 얼른 가야지- 

그런데 길을 따라 으리으리한 집들이 다 줄 서있다.

모양도 제각각인데다 심지어 예쁘기까지 하다. 

재는 이래서 예쁘고 쟤도 이래서 멋있고 ㅋ ㅑ-

하다가 또 길을 잃었다.

아......진빠져. 한참을 돌아돌아 입구를 찾았다;;

하필 이 날 빌린 참고문헌들, 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돌아돌아 들어왔는데

우왕 여기는 천국인가

들어서자마자 숲 내음이 코로 훅 들어온 것도 놀라운데

영화 같은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드넓은 잔디밭과 내리쬐는 햇살에 

눈에 들어온 모든 빛이 초록초록초록이다.






미니 베르사유-


그건 그렇고 사람들이 잔디에 참 잘 누워. 벌러덩. 내 집인양. 

소풍갈 때 자리를 갖고 와서 까는 건 양반인데 

한 번은 흰 침대 시트를 빼와서 깔아놓은 걸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아 제발ㅠㅠㅠㅠ


이런 걸 보면 나는 자연친화적인 인간인가 아닌가

문득 궁금해진다.


풀숲은 되게 좋아하면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앉지 못하고 벌레를 경계하기 바쁜 나는...


풀밭이고 꽃밭이고 아무데나 앉으면 무려 쯔쯔가무시병에 걸린다고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린 가정통신문이 아직도 생각나는 나는...

(갱지에 궁서체의 조합은 참 묘하게 권위적이야.)





뮤제는 담에 가보기로 하자





수목원 자태를 자아내는 올곧은 나무들이 끝도 없이 심어져있다. 

규모가 워낙 크니 절반만 보고 나와야 겠다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호수를 한 바퀴 빙- 돌고 있었다.

게다가 그 넓다란 공원을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자

나도 운동하고 싶다는 의지가 불끈 솟았다.


일단 참고문헌 같은거 안 갖고 다녀도 되는 때에 

산책이나 조깅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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