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propre pensée

한 나라의 저력이란

yurinamu 2015. 5. 5. 07:46


자의 반, 타의 반 자료찾기에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하고 많은 주제 중에 bibliographie가 지지리도 없는 주제를 골랐나보다. 

1학년 때는 참고 문헌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밤낮으로 고생했는데

이번에 또...창작열을 불태우게 생겼다.


없는대로 박박 긁어모으고 있는데 

새삼 느끼지만 이 나라, 참 무섭다...


bnf를 다니던 초창기, 복잡한 도서관 시스템을 사서에게 듣고 배우던 때였다.

검색창에 la corée 관련 검색어를 쳤는데 고문서가 수두룩하게 조회되었다. 

방대한 자료에 놀란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세로쓰기된 고서적을 스캔한거며 

사진 찍은것까지 하나하나 열람번호를 매겨 보관해놓고 있는걸 보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역사적 사료가 될 만한 중요한 문화재일지도 모르는데 이게 왜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좋은 환경의 국립도서관에 고이 모셔져 있음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싶기도 해서 헛웃음도 나고..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여기서 근무하셨던 고 박병선 박사도 직지를 그렇게 발견하셨겠지...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어제도 조불통상조약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니, 어제는 기어코 울음이 터졌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 발을 디딘 프랑스인 선교사가 쓴 여행기를 찾았다.

프랑스어로 쓰여져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수교 역사와 해외교류의 시초를 되짚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bnf에서 찾았더니, 전체 내용을 스캔으로 떠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책 분량이 워낙 많아 내가 찾는 특정 호수와 페이지를 걸러내는데 애를 먹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수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정말 꼼꼼하게 치밀하게 정리해두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이걸 정리하고 찾는 사람들은 최소한 무언가에 결벽증을 가진 사람들일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덕분에 내가 참고문헌으로 낼름 받아 쓰고 있긴 하다만:)


구글링을 해보니 스캔본 보다 더 좋은 실물 사진이 나왔다! 

annexe로 붙이기에 더 좋을것 같아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출처를 보니 우리나라 고서적판매사이트로 연결된다. 들어가 보았다. 

설마...... 올려진 책 사진의 상태나 설명을 보아 그냥 복제품이 아니다. 

가격..... 60만원?

원본이라면 귀한 자료일텐데.. 

이게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아 돈만 지불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니.


한 문화재를 다루는 두 나라의 태도와 방식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열람번호,서재정보가 빼곡히 나열된 국립도서관 홈페이지와 장바구니 버튼이 당당하게 붙어있는 서점 웹사이트.

두 개의 창을 켜놓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왠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태도의 차이일까. 가치관의 차이일까. 

자꾸 이해하려 해봐도 속상하기만 할 뿐이다. 


이 나라는 매일 경제가 어렵다, 세금을 늘린다, 이민정책을 바꾼다 각박하게 돌아가도 

변함없는 가치를 가진 것, 특히 문화재에 대해 집착하고 투자하는 것만은 참 올곧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다가도 문화강국의  '저력'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순간이 있다. 

참 멀리 보는구나 싶어 부럽기도 하고 어떨 땐 얄밉기까지 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수익이 아니더라도 그렇게까지 목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문화예술분야를 깊이 파고들수록, 또 배울수록 느낀다. 


자본주의로 점철된 사고에서 문화재는 커녕 국가의 땅도 외국에 팔아넘기는 세태가 안타깝다.

문화예술의 발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있는 것이라도 잘 지켜내야 할텐데...너무 안타깝다. 

해외 나와서 애국자 되었나 오지랖이 넓어졌나, 이런 뉴스만 보면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대우를 받으려면  가치를 내가 먼저 알고 아껴야 다른 사람들도 가치를 인정해준다.


Musée des arts décoratifs 의복 전시에서도 이들의 옛 것에 대한 집착과 수집증은 빛을 발했다. 

그 어마어마한 단추들을 보자마자 하마터면 비명 지를 뻔 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전시실이 단추로 가득했다. 

고대 의복에 쓰인 리본과 장식, 단추를 하나하나 모아 연대별로 전시해 놓았는데

참 오타쿠 같으면서도 그야말로 장인정신일세 하며 감탄했다.


곳곳에서 하는 전시나 문화행사를 다녀보면 이 나라는 참 갖고 있는 것도 많다.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해서 고민이라니- 행복한 고민이다. 

꽁기꽁기 모아온 자료나 문화재를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자리를 보면, 

예전엔 그들이 모아온 방대한 자료나 물건들이 탐나고 부러웠는데

이젠 이들에게 깃든 역사와 문화예술에 대한 기본 정신이 탐나고 샘난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것을 소중히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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