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주 전에 사 온 꽃을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방 한 켠에 머물렀던 꽃들을 모아봤다.
여기 이사온 후로 꽃을 다양하게 사봤는데
정작 사진으로 남겨둔 건 별로 없어 아쉽다.
꽃을 사다 꽂는 일에 재미가 막 붙었을 초기에는
종종 색이 좀 바래도 괜찮은 꽃잎을 모아 말려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꽃의 얼굴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해서
각각의 가장 돋보이는 얼굴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그 어울림을 만들어주는 것이 꽃꽂이라고
엄마가 누누이 말씀하셨거늘...
꽃꽂이 실력이 좀체 늘지 않는다.
그러나 근거없는 자신감으로ㅋ
기분이 좋아지는 데에 만족하는 것으로
꽃을 사기 시작했다.
네모나게 각이 진 긴 유리화병에
더 더 목이 긴 빨간색 꽃 한 두송이를 넣어두는 것도 좋다.
얻어걸린 듯한 겐조 이미지에 뿌듯해했던 게 좀 부끄럽긴 하나
어쨌든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꽃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기분좋은 일이다.
처음엔, 꽃을 왜 그렇게 자주 사냐는 친구 말에
'방 안에 나 말고 숨쉬는 생명체가 없으니까'
하는 말로 친구를 슬프게 했지만...
지금은 그 즐거움을 알았다.
내 집의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꽃의 얼굴 하나, 표정 하나에
시선이 잠시 머무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
일본에서 친구가 보내 준 랑그드샤 과자와
내가 좋아하는 색 장미.
이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친구도
무척이나 이 장미를 좋아하는 내 모습에 점점 마음에 들어했다.
사진에는 좀 배추같이 나왔지만
내 방, 빈티지 소품과 잘 어울려 더 좋아한다.
어릴 때 집에서 엄마가 보는 잡지에 나온 유러피안 부케를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주황색, 파란색, 보라색, 흰색, 빨간색....
온갖 종류의 꽃을 섞어 한 데 모은 뒤
가늘고 긴 녹색 잎으로 줄기를 꽁꽁 둘러맨 부케였다.
망사 포장과 리본, 안개꽃을 너무나 싫어하는 나였기에;;
이렇게 간단하게 꽃을 포장하는 방법도 마음에 들었고,
마치 꽃이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판에서
한 웅큼 쥐어 나온 듯한 신선함이 느껴져 좋았다.
우연히 꽃집을 지나다 형형색색의 장미를 본 순간
어릴 때 사진에서 본 그 부케가 생각났다.
겁도 없이 원색을 뿜어내는 이 꽃송이들을 집에 가져오기까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긴 했지만,
덕분에 무채색이던 집에 여름 내내 활력이 생겼다.
또 좋아하는 색 장미.
리시안셔스와 흰 장미, 정말 좋아하는 조합이다.
한창 유칼립투스를 사다 꽂아놓을 때라 같이 화병에 넣었더니
꽤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왔다.
흰 집에 흰 꽃도 썩 괜찮다.
봄이 되면 꽃집에 항상 작약이 넘쳐난다.
뚜르에 살 때도 중앙로에 꽃 시장이 서면
집집마다 지나며 작약을 구경하곤 했다.
여기 와서도 봄 되면 예외없이 작약을 한 번씩은 산다.
흰색, 옅은 분홍색 모두 좋아하는데 이 날은 진분홍색을 샀나보다.
조그맣고 야무지게 입을 앙다물고 있다가
통통해지면서 비로소 망울을 터뜨리고
겹겹이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져 갈 때
기분도 절로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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