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propre pensée

Cher Elvis

yurinamu 2015. 1. 13. 08:30


엘비스...


너란 아이 참 끈질기구나.

고양이는 무릇 사람이 싫은 내색 하면 얼씬도 않는다던데

너는 참 굳세다. 


네 첫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다.

고백하건데, 내가 고양이란 생명체를 그리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야.

시금치 다듬고 있을 때 어떻게 들어왔는지 넌 방 한가운데 앉아있었지.

정말 접시 떨어뜨릴 뻔 했어. 그 날 오랜만에 생선 구웠는데 말이야.

합성사진인 줄 알았어. 익숙한 내 방 한 가운데 떡 하니 앉아있는 고양이라니. 

너무 놀라 악 소리도 안 나오더라. 

당황한 나와는 달리 넌 거실에 앉아 이것저것 구경하더라. 

벽에 덕지덕지 붙은 엽서를 보고 검은 베니스 가면과 눈을 맞추고 있었지.

참으로 당당한 널 보고, 아마 이전 주인은 널 꽤나 예뻐했나보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가라고 친히 현관문도 열어줬는데 날 보던 너의 그 눈빛을 잊지 못해. 

훠이훠이 손짓하는 날 보며 '너 뭐 하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너...

난 고양이도 강아지처럼 나가라면 나가는 줄 알았지.. 들은 척도 안 하더라?

그때 난 네가 교육을 받지 않은 길고양인줄 알았어. 말을 못 알아듣길래. 개랑 다른 줄 몰랐지 난. 

꿈쩍도 않다가 내가 다가가니 테라스로 훌쩍 뛰어가서 그 좁은 창틈으로 쑥 빠져나가더라.

난 고양이가 이동할 때 발소리가 안 나는지, 몸이 그렇게 늘어나는지 몰랐어. 충격의 연속이었지.

아무튼 새로 산 커튼에 구멍낸 건 참 유감이야. 


네가 양지바른 곳(나무더미)에 앉아서 날 지켜본다는 걸 알았을 때 좀 섬뜩했어.

사람은 아니지만 인기척 좀 내면 안되니... 수시로 몰래 와서 창 밖에 네 얼굴이 보일 땐 솔직히 좀 소름이 돋았어. 

너의 표정이 몹시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는 더 놀랐어. 다른 사람, 아니 다른 고양이 같더라. 

호기심 어린 표정만 기억했는데 어떨 땐 가필드 같고. 어떨 땐 부랑아같고.


왕거미 3마리씩 문에 끼워주지 않아도 나 사냥 잘 해...

모노프리가서 내가 얼마나 사냥을 잘하는데ㅠ

게다가 싱싱하게 산 채로 넣어줘서 나 문 열 때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잖아...

그게 보은이라고 하길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고마워 할 빌미를 제공하다간 내 명이 줄어들겠구나..


매일 문 앞에서 발 모으고 기다리고

딴청 피우는 척 하면서 째려 보는 거 이젠 좀 덜 해줘서 고마워.

작년 이맘 때쯤엔 참 자주 기다렸지 아마. 

쪽문만 열면 네가 있어서 퇴근 노이로제 걸릴 뻔 했어. 아오. 엄청 놀랐어. 


근데 요샌 새로운 특기가 생겼더라. 

그래서 부탁하건대, 자꾸 문에다 입 대고 부르지마...

냐옹냐옹 15분씩 하면 너도 목 아프잖아.

내가 이틀 이상 집에서 안 나오면 궁금한가본데 정확한 이유가 뭘까. 혹시 생사를 묻는거니? 

냐옹냐옹냐옹냐옹하다 끝에 냑! 하는 걸 보면 너도 슬슬 짜증이 나는가 본데 

그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는데 말이야.


점점 용감해져서 걱정이야.

자꾸 위장술 쓰려는 것 같은데 다 보여.

언제 들어왔는지 신발장에 부츠인 척 하고 앉아있더라? 아주 보호색을 띄고- 

언뜻 보니 부츠가 세 개라 얼마나 놀랐던지.

옷장에 숨어들어가서 꼬리만 내놓으면 모를 줄 알았지. 숨으려면 다 숨던가.

너 생각보다 엄청 커. 거기 다 안 들어간다고.

꼬리가 삐죽 나와 있길래 순간, '내가 이런 색 가방을 산 적이 없는데..'했다가 머리가 쭈뼛 섰어.

너 땜에 네 아빠도 당황하시잖아. 매번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시고;;

왜 그르냐....


저번에 화단에서는 좀 웃겼어.

화단 창살에 눈만 가리면 너가 안 보이는 줄 아니.

범죄자 모자이크 한 것처럼 그게 뭐야...

거기서 나 지켜보고 있는 거 다 보여. 

다시 말하지만 네 몸뚱이 되게 커. 안 가려진다고.


한 가지 고마운 건 있다. 

불미스러운 일 있었을 때 경찰 기다리느라 내가 집 밖에 우두커니 앉아있었지. 

그 때 마치 네가 경찰인 양 집 곳곳을 둘러보고 내 옆에 앉아 꼼짝않고 1시간을 기다렸잖아.

위로해주려는 의도인 거 알고 있었어. 내심 짐작하고 고마웠어. 

근데 한편으론 사실 나 좀 무서웠어..

굳이 예를 들자면 너 옆에 1시간동안 호랑이가 앉아 널 지켜보고 있는 것과 비슷한 걸거야. 


난 1년 반이나 지난 지금도 네가 좀 무서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딱 긴장을 한다고. 

강아지는 되게 예뻐하는데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한번은, 어지간히 관심 못 받는 네가 안타까워서 차라리 네가 강아지였다면 좋았을텐데 한 적도 있어.

강아지면 내가 정말정말 예뻐했을텐데. 아주 우리집에 살다시피 하게 했을거야.

매일 산책도 하고 목욕시켜주고 옷이랑 간식도 사주고 같이 놀고. 

아쉽다.


그래도 나 요즘 인사는 하잖아. 나름 많이 노력하는거야.

주변에선 내가 관심을 안 보이니까 네가 다가오는 거라는데 

관심을 보이면 옳다구나 더 올까봐 내심 두려워. 

정말이지 내 솔직한 심정이야.


다른 건 뭐라고 안 할게. 부탁 하나만 하자.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건 삼가해줘. 

여기 내 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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