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 에필로그 : Buen Camino, My Life!

yurinamu 2010. 11. 3. 16:58

 

 

 

 

# 아침마다 쥐 나서 깨는 것도 없어졌고

양쪽 어깨에 배낭자국과 함께 든 멍도 없어졌다.

어깻죽지와 종아리 근육이 찢어져라 아프지도 않다.

햇빛에 그을린 것 마냥 새까맣게 탔던 피부도 가라앉았다.

불긋불긋했던 베드버그 자국은 점점 희미하게 없어지고 있고

아스투리아스 마녀같이 뻣뻣해진 머리카락도 다시 고분고분해졌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신발을 벗고 집에 막 들어왔을 때의 그 어색함, 그리고 따뜻한 온기:) 

맨발이 마룻바닥에 닿았는데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무거운 등산화 안 신고 다녀도, 배낭 안 지고 다녀도 되는구나

샴푸, 바디클렌저, 클렌징폼, 비누도 모두 따로따로 사용할 수 있겠구나

탭 누르고 있으면서 물벼락을 맞지 않아도 샤워기로 샤워도 하고 머리 감을 수 있겠다

매일 찬물에 손빨래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베드버그 걱정하며 침대랑 옷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피에스타랑 시에스타 신경쓰지 않고도 언제든 뭘 사먹을 수 있겠다 등등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그동안 참 생고생을 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가끔은 그립다.

여행이나 업무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였으니

사소한 순간에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난다.

아마 반드시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도 겪지 못할 추억일거다.

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완성했기에 그만큼 소중하다.

물론 베드버그는 빼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간 것도 아니고 결코 자신만만해서 떠난 것도 아니다.

등산은 커녕 공원 한 바퀴도 버거운 저질체력.

등산화와 배낭, 스틱까지 모두 처음 만나는 제3세계 물건이었다.

까미노 델 노르테(Camino del Norte)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고

하루하루 어떤 길을 지나게 될 지로 몰랐다. 심지어 스페인어도 못했다.

모르면 용감하다더니 다녀온 뒤인 지금 생각해봐도 좀 무모했던 것 같다ㅋ

그치만 바라고 있던 걸 이뤘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해냈다는 것.

두 가지는 그 무모함으로 얻은 값진 경험이다.

지금은, 오히려 제대로 알기 전에

혹은 더 늦기 전에 떠났던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순례자들은 흔히들 까미노를 인생길에 비유한다.

배낭은 자신이 일생동안 짊어지고 가야할 짐의 무게이고

까미노는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예측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길이라고 말이다.

다만 노란 화살표가 없을 뿐이다.

 

한 번의 인생길을 걸은 셈이니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ㅋ

앞으로도 계속되는 까미노를 해야겠다. 

'Buen Camino,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