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39. 산티아고행 노란 화살표(Fisterra-Santiago de Compostela)

yurinamu 2010. 11. 1. 15:56

 

 

 

# 따뜻한 블랙커피로 아침을 맞았다.

추워서 그런지 자꾸만 커피를 찾게 된다.

노르테 알베르게에 주방까지는 아니었어도;;

아침에 커피 한 잔 끓일 수 있는 커피포트 하나 있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하긴 이렇게 바라면 한도 끝도 없을 거다.

덕분에 나는 스페인 북부 지역의 카페 콘 레체를 모두 맛보는

바(Bar)투어를 한 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ㅋ

  

부랴부랴 채비를 하고 8시 20분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는 길.

새벽 바닷바람이 이렇게 좋은 지 처음 알았다.

감탄하며 바닷가를 지나는데 그냥 가려니 아쉬웠다.

아직은 검푸르게 보이는 바닷물이 모래 위로 밀려온다.

걸을 때마다 퐁퐁 튀어오르는 흰 바닷게를 물리치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파도에 발을 조금 담가보았다.

땅끝까지 올 수 있게 한 대견한 내 발이다.

파도 소리를 한참 듣다가,

땅끝 바다는 이런 느낌이구나 싶으면서도

'언제 또 오게 될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 한참을 돌아보다 정류장에 갔더니 온통 순례자들 뿐이다.

어디서들 그렇게 스멀스멀 나오시는건지 모르겠다.

버스로 또다시 2시간 반을 달려 다시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예약해둔 알베르게로 직행했다.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ㅜ

 

 

 

 

# 짐을 풀고 진정을 시킨 뒤 성당으로 향했다. 성 야고보상을 보기 위해서다.

12시 미사를 많이 보니 그 때 줄서면 사람이 좀 적겠지 싶었는데 역시나 길었다.

1시간을 기다려 미사 중인 12시 반쯤 들어갈 수 있었다.

 

성 야곱 상의 어깨에 손을 얹고 포옹을 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순례를 마치는 의미가 있다. 

온통 화려한 장식으로 빛나는 계단을 올라가 손을 얹고 잠시 기도를 드렸다.

나오는 길에는 작은 황금색 관도 놓여 있었다.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성당을 나왔다.

 

 

 

 

#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인지 그저께보다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성 야곱상을 보러 온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족히 2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유유히 나와 성당과 주변 길을 둘러보기로 했다.

정신없던 첫 날과는 달리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 영광의 문으로 가 야곱 상도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내부 공사 중이었다.

옛 순례자들이 성 야곱상에 기도를 하면서 생긴 손 자국이 기둥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해

직접 보고 싶었지만 사실 주위로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먼 발치에서 철근에 둘러싸인 모습만 조금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 성당에 관련된 전시품들도 둘러보고

위로 올라가 성당 앞 광장도 내려다보았다.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저마다 성당을 바라보고 기쁨에 벅차 환호하는 모습이

이 곳에 서면 정면에서 생생하게 보인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지나는 사람들과 분장한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었다. 

 

 

 

 

# 주변의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엽서 몇 장과 조악하지 않은 화살표 뱃지를 골랐다.

기념품 점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은 티셔츠다.

새 옷이 순례자들에게는 단순히 기념품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이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몸과 마음을 모두 정화한다는 의미로

까미노 내내 입었던 헌 옷을 버리고 새 옷과 신발을 사서 깨끗하게 갈아입는 풍습이 있다. 

헌 옷이나 신발 등은 피스테라에서 태워버리기도 한다.(지금은 금지되었지만;;)

그래서인지 노란 화살표가 그려진 새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점에도 들렀다.

그동안 북쪽길을 걸어오면서도 서점이 보이면 종종 들렀는데

여긴 산티아고에 있어서 그런지 까미노 관련 책만 한 코너다.

포르투갈길이나 은의길, 르퓌길 등 각종 루트에 대한 책이 넘쳐난다.

한국에는 없는 귀한 자료다. 다음 길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사오고 싶을 정도로 다양했다.

주변을 서성이다가 결국 기념이 될만한 북쪽길 다이어리 한 권을 구입했다. 

몰스킨 위클리다이어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안에는 내가 걸었던 북쪽길 루트가 구간별로 그려져 있었다.

지도도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어서 

'까미노일지를 진작 여기에 썼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

여태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가자마자 다이어리 정리할 생각부터 하는 거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