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36. 카페 콘 레체 다섯 잔만큼(Pedrouzo-Monte de Gozo : 15.12km)

yurinamu 2010. 10. 30. 22:41

 

 

 

 

# 몬테 드 고조(Monte de Gozo)까지 15km만 걸으면 되는 날이다. 

물론 여기서 5km만 더 가면 산티아고다.

내친 김에 한 번에 갈 수도 있지만

산티아고 입성을 앞두고 설렘을 맘껏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

자신만의 까미노를 여유있게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아침 일찍 산티아고에 입성해 미사를 볼 사람들은

여기 몬테드고조에서 하루를 묵는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출발하려 했으나 역시 무산됐다;;

5시부터 짐을 싸는 뭇 개미과 사람들을 당해낼 수가 없다.

어젯 밤에도 막 멋대로 불을 켜고 떠드는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난리도 아녔다.

까미노가 체화된 캐나다인 노부부도 왠만하면 언급 안하시는데

요즘 들어선 알베르게에 대한 불만이 많으시단다ㅋ

 

어젠 내 윗층 침대에서 자던 남자가 코를 심하게 골아

내가 잠을 못 자고 뒤척거리자 할머니가 옆에 오셔서는, 

"왠일이니~ 밑에서 확 걷어차버려.

아님 내가 콱 쥐어박고 도망갈까?" 그러시는ㅋㅋ 

 

 

 

 

# 아직 아두컴컴한 7시다.

아마 최고로 빨리 나온 시각인 듯ㅋ

오늘 반 이상은 산티아고로 가느라 더 서두르는 것 같다.

천천히 6-7km를 갔는데 간밤에 잠을 설쳐서인지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중간에 있는 바에 들러 커피를 잔뜩 마시고 나서야 기운을 차렸다.

카페인의 힘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 오르막에 봉착.

오늘따라 오르막이 잦다.

 

조금씩 지쳐가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부엔 까미노' 인사에 답하며 마지막 까미노를 즐겼다.

사람들의 표정도 제각각이다.

뒤에서 보면 발걸음과 배낭에도 표정이 있는 것 같다.

가방도 없으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무거운 가방 메고 콧노래 부르며 가는 사람들도 있다.

 

 

 

 

# 갈리시아 방송국과 캠핑장을 지나 몬테드고조 알베르게에 도착.

천천히 온 것 같은데 배낭 순서를 보니 앞에서 5번째다.

다들 산티아고로 가신 모양이다.

빨리 감동의 순간을 느끼고 싶어서일까;;

내 앞에 놓인 가방은 캐나다인 부부의 것이었다.

우리 북쪽길 패밀리가 내일 산티아고에 같이 도착하겠다며 너무 좋아하신다.  

사실 어제 자꾸만 산티아고에 바로 갈거냐고 물으셨었다. 

여기에 하루 묵을 거라고 하니 잘 생각한거라고:)

 

알베르게가 열리기 기다리는 동안 성당 주변에 있던 기념탑에 올라가봤다.

네 면 모두 다른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까미노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특히 여러 갈래의 까미노길(프랑스길, 북쪽길, 포르투갈길, 르퓌길, 은의길 등)을

손금으로 형상화한 조각은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멋있었다.

화살표나 가리비 모양을 따라 까미노를 나타낸 작품도 봤지만 이게 젤 맘에 든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선택하든 오로지 너의 손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는 듯:)

 

 

 

 

# 알베르게는 거대한 주거단지처럼 생겼다.

수십 개의 베드가 있는 단층건물이 한 동.

그게 30동까지 있으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길을 따라 1동까지 쭉 내려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중간에 카페, 셀프레스토랑 등 필요한 것만 갖춰놓았다.

상점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아 빈 자리이거나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많고 세탁소, 바는 셀프식이다.

순례자들이 이만큼 찾아올까 그것도 의문이지만, 이 곳 관리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 오늘만 벌써 5잔째다.

커피가 오늘처럼 고픈 날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담담한 것 같은데 글쎄,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걸까?  

산티아고가 저 앞에 있다는 것이 별로 실감나지 않고 기쁘지만도 않다.

그저 지난 길에 대한 추억만 생각날 뿐.

 

딱 힘들었던만큼, 그만큼 더 생각나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눈물 쏙 빠질만큼 힘들었고

진정으로 감사할 일도 많았다.

 

이제 고지가 눈 앞이다.

산티아고.

그 곳이 목표는 아니었던만큼

그 동안의 시간과 행운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