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37.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Monte de Gozo-Santiago de Compostela:4.86km)

yurinamu 2010. 10. 31. 11:41

 

 

# 바스락거리는 침낭 소리가 밤새 들렸다.

다들 잠을 뒤척였나보다.

나도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다.

잠도 안오고 해서 일찍 일어나 출발하려는데

하나 둘 짐을 챙기기 시작하더니 결국 다 일어났다.

이 알베르게의 새벽은 항상 이렇게 분주하고 설렐 것 같다.

 

오늘은 4.8km

한 시간이면 닿을 거리지만 천천히 가기로 했다.

캄캄한 새벽, 모두 가벼운 발걸음으로 알베르게를 나선다.

손전등을 켜고 가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이 많다.

어두워서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인사도 열심이다.

특히 오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부엔 까미노'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도시의 불빛이 가까워질수록 실감이 난다.

산티아고 초입은 생각만큼 옛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직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까지는 조금 더 가야했다.

많은 차와 높은 건물, 붐비는 거리와 바쁜 사람들.

들어서는 길이 낯설다.

매케한 매연에 재채기를 대여섯번씩 하면서

'그동안 참 시골스러운 곳에 있었구나'라 생각이 들었다. 

 

 

# 화살표(가리비)를 따라 가자 순례자들이 향하는 곳이 나왔다.

이른 시간이라 배낭 멘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스틱을 땅 땅 짚으며 돌길을 따라 성당 왼편으로 난 문을 통과했다.

 

드디어 성당이다.

가슴도 막 벅차 오르고, 눈물도 주루룩 흐르고, 소리도 막 지르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생각보다 큰 감흥이 없었다.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별로 좋지 않은 건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여느 알베르게에 머물며 보던 성당처럼, 그렇게 느껴졌다.

 

 

 

 

 

#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성당이 좀 무섭게 찍힌다.

카메라를 다시 만지고 찍으려는데

저쪽에서 신디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온다. "YEAH~!!"

"우와~~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마주치다니 진짜 놀랍다.

그저께 도착해서 이틀을 묵고 지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란다.

예정일보다 빨리 도착해 레온까지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좀 피곤해보였지만 긴 여정을 마쳤다는 후련함과 여유로움이 얼굴에 묻어났다.

서로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며 진짜 작별인사를 했다.

한 손에는 산티아고 타르트를 들고 손을 흔들며 가는 모습이 참 행복해보였다. 

 

 

 

# 성당 오른편으로 돌아서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갔다.

9시 오픈이라 일찍 왔는데도 벌써 줄이 길다.

내 바로 앞에는 캐나다인 부부가 도착해 줄을 서 계셨다.

그런데 할머니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시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지난 알베르게에서 누군가 스틱 한 쌍을 훔쳐갔단다.

이런;;;;; 3번의 까미노 내내 버팀목이 되어 준 스틱인데 없어졌으니 정말 속상할 것 같았다.

순례의 마지막날, 산티아고를 앞두고 누가 그런 짓을 한 건지 참.

순례자 사무실로 오는 사람들의 스틱을 살피며 계속 찾으러 다니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가장 기쁘고 기분 좋아야 하는 오늘을

아줌마에게서 몽땅 앗아간 그 사람은 정말 벌 받을거다 흥!

 

9시가 가까워오자 줄이 몇 배로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 속에 크리스티나와 마틴이 오는 것이 보였다.

캐나다인 부부와 내가 인사를 하자 너무 놀란 나머지

줄 서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로 축하해주기 바빴다. 

할아버지께선 북쪽길 사람들은 우리 5명 뿐인 것 같다며 꼭 가족같다고 하신다ㅋ 

정말 이산가족 상봉같은 분위기였다.

 

1시간 정도를 기다려 드디어 사무실 내로 들어갔다.

두 장의 크레덴시알을 보이고 증명서를 받았다.

"이룬(Irun)에서 출발하셨군요. 모두 걸어서 오셨나요?"

"아니요, 대부분 걸었지만 힘든 구간을 만나면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탔어요."

산티아고 100km 이전부터는 반드시 걸어서 왔는지를 확인한 후 증명서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출발한 도시 이룬, 출발한 날짜 8월 17일, 그리고 도착한 날짜 9월 22일... 

오늘, 내 생일이기도 하다.

동사무소에서 등본 떼 주듯 발급해 주는데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특별한 생일 선물을 받은 것 같다.

 

 

 

 

# 증서를 받아 원통에 넣고 사람들을 따라 아래 짐 맡기는 곳에 갔다. 

숙소도 못 구한터라 일단 배낭을 맡긴 뒤 인포센터부터 찾으러 갔다.

한국에서 알아 온 호스텔이나 알베르게는 모두 만실이다. 예약으로 꽉 찼다.

비교적 여유로운 북쪽길 알베르게에서 지내왔기 때문인지

예약개념이 잠시 사라졌었나보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몇 군데는 주소를 알아내 직접 가보기도 했지만

외지기도 하고 묵을 방도 없어 그냥 돌아섰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까사펠리사(Casa Felisa)펜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냥 여느 바처럼 생겼다.

당황스러워서 바 주인에게 확인해보니 바와 펜션을 겸하고 있다고 했다.

근데 자꾸만 bed가 bedroom 안에 없고 바깥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응?

재차 물어도 같은 말만 계속 한다.

그럼 침대가 테라스에 있나? 침대가 해먹인가? 별 생각이 다 든다.

직접 보고 싶다고 얘기하자 방을 보여준다.

알고보니 bed가 아니라 bath를 말한 것-.-;;;

내부에 샤워실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꽤 괜찮은 방인 것 같아 하루 묵기로 했다.

벽에 나무와 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건물이라 조명을 켜니 방이 멋있어 보인다.

간만에 1층 침대에서 맘 편히 잘 수 있겠다.

 

 

 

  

# 오전 11시 이전에 등록을 마친 순례자들은 미사 때 불러준다고 해 기대를 했다.

그런데 너무나 많아서인지 출발지 이룬을 듣긴 했으나 국가명을 들었는지는 가물;;

12시 미사는 관광객과 순례자가 가장 많은 시간인가보다.

신부님 열 다섯분 정도가 나오시고

성체 영할 때도 구획별로 나누어서 했다.

언제나 그랬듯 평화의 인사 나눌 때마다 동양녀자 보고 흠칫 당황하시고..

더러 악수하고 나서 기도손 따라하시는 분들도 계시다ㅋ

1시간 넘게 까치발로 서서 미사를 봐야해서 다리가 넘 아팠지만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많은 사람들과 미사를 본 건 처음이다.

 

모쪼록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어,

성당에서 미사를 볼 수 있어 감사했다.

 

 

 

 

 

# 성당 주변은 중세 거리처럼 돌로 지어진 건물이 대부분이고

바와 레스토랑, 기념품가게 등이 들어서 있었다.

해물 빠에야, 하몽, 샹그리아, 산티아고 케익 등을 전문으로 파는 상점들이 특히 많았다.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메뉴델디아(Menu del Dia)선택.

스페인에서 타파스로도 많이 먹는 뽈뽀파이를 택했다.

문어가 들어가 맛있겠다 싶었는데 그냥 문어빵 같다;;

추천을 받아 감자를 곁들인 흰살 생선요리와 화이트 와인을 먹었는데 전체적으로 무난한 가정식 같다.

디저트는 단연 산티아고 타르트-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어 더 맛있는 듯ㅋ 

아몬드가루가 들어간 고소한 타르트 위에

십자가 모양의 슈가파우더가 뿌려져 있는 산티아고 특산물이다.

 

에너지 충전을 마치자 이제 좀 살 것 같다.

레스토랑을 나와 다음 숙소찾기에 돌입했다.

24일 피스테라(Fisterra)를 다녀온 날 여기에 하루 더 묵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보를 총 동원해 유일하게 있는 알베르게를 발견하고 직접 찾아갔다.

스페인어와 독어만 쓰시는 주인 할아버지는 계속 만실이라며 내 얘기를 듣지 않으신다;;;

옆에 있던 한 스페인 친구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24일 하루를 예약했다.

 

바로 중앙우체국으로 직행했다.

히욘(Gijon)에서 부친 짐을 찾기 위해서다. 제대로 부치긴 했지만

우체국에 잘 도착한 건지, 잘 보관되어 있는 건지 궁금하고;;조마조마;;

노란색 소포 봉투를 받아든 순간 '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스티커를 보니 9월 11일 도착했나보다.  

히힛, 생일선물받은 것 같다:)  

 

 

 

 

 

# 기념품점을 둘러보는데 대부분의 기념품이 그렇듯 다 쇳덩이;; 

한꺼번에 사면 무거우니 피니스테라에 다녀와서 보기로 하고 엽서만 몇 장 골랐다.

산 엽서를 갖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사람이 북적여도, 햇빛이 따가워도 이젠 밝은 테라스가 더 좋다.

그러고 보니 뭘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벌써 오후 5시 반.

엽서를 쓰면서 정신없던 하루를 좀 돌아보고 지나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카페에 앉아있으려니 낯익은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할 수 없으나 어쨌든 본 적 있는 순례자다.

그 쪽도 나를 아는지 인사를 건네고 간다. 

하긴, 까미노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으니

난 너를 몰라도 넌 나를 기억할 수 밖에;;흑ㅜ

 

 

# 빵집에 들러 작은 산티아고 타르트를 샀다.

전문점에서 파는 건 너무 커서 다 먹을수가 없으니 미니미로~

무거워서 까미노 중엔 엄두도 못 냈던 파파야도 반쪽짜리가 있는 걸 발견!

가장 좋아하는 과일 파파야님을 냉큼 모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타르트, 파파야, 요거트.

엄마한테 혼나기 딱 좋은 식단이지만

'생일이니깐 좋아하는 것만 먹어야지' 하는 어린이마인드로 잠깐 돌아가기로 했다.

 

비록 간소한 축하케익이었고 낯선 곳에서 혼자 맞이했지만

여느 때보다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레지나, 생일 축하해!'

 

 

 

 

 

# TV를 오랜만에 보니 영 어색하다.

TV소리를 들으니 마치 방 안에 다른 사람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원시인 다 됐다.

볼륨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영상만 튼 채로 지난 까미노를 생각했다.

 

17일 이룬에서 출발해

33여개 도시에서 묵으며

35일만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해안길도 걷고 마을길, 숲길, 자갈길, 산길, 논두렁길,

돌산, 계곡, 덤불까지 북부 해안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다신 못 걸을 것 같던 물집투성이 발도 이젠 끄떡없고

왠만한 오르막길은 단숨에 오르며 무릎도 아프지 않다.

매일 쥐나서 깨는 것이 일상이 됐지만

이마저도 까미노의 증표다 생각하면

저린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왠만하면 '이 정도 쯤이야~' 하고 넘길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