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35. 참 잘한 결정(Arzua-Pedrouzo/Arca O pino : 19.20km)

yurinamu 2010. 10. 30. 11:44

 

 

 

#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소리와 눈에 닿는 손전등 빛때문에 잠이 깼다.

휴대폰을 보니 아직 5시다.

새벽 서너시에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만 이것도 참 생경한 풍경이다.

부시시 일어나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차 몸이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건조대로 가는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말그대로 별 천지다.

이렇게 반짝반짝 가까이서 빛나는 별을 본 것도 처음이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장관은 정말 처음 본다. 

'이렇게 새벽길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을 따라 새벽길에 올랐다.

아직 컴컴해서 한치 앞이 안 보이지만 괜찮다. 사람이 많으니까;;

손전등 켠 사람들을 따라 열심히 걷는데, 사람이 많다 많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북쪽길은 화살표를 보고 가고 프랑스길은 앞 사람을 보고 간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화살표도 많이 있지만 50m에 한 명꼴로 가는 듯.

배낭 행렬을 보고 있자니 동네 뒷산 오르는 느낌이다.

 

길도 굉장히 평탄해졌다.

그런데다 사람도 많으니 페이스조절도 어렵고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잘 파악이 안 된다.

멈춰서서 경치를 보거나 맘대로 쉴 여유가 쉬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북쪽길 걷기를 정말 잘 했다. 

 

열심히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비비카다!

사람들이 계속 지나는 길에서 얼싸안고 난리가 났다ㅋ

콜롬브레스에서부터 계속 만나다가 세르바유 이후로는 보지 못했는데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자기와 같은 종류의 큰 배낭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어 자세히 봤더니 나 같아서 얼른 불렀단다.

오늘 산티아고까지 가는 것이 목표란다. 

워낙 빨리 걷는 그녀지만 오늘만큼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다고 했다.

훌륭한 스페인어 선생님이 되어준 그녀, 부디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도착하길:)

 

 

 

 

# 중간중간 마을도 많이 지나고

바가 아침 일찍부터 열어 지나는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8-9km쯤 걸어 A Calle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쉬었다.

바도 북적북적하고 정신이 없다.

테라스에 앉아 있으려니 까미노를 따라 사람들이 계속 지나간다.

끊.임.없.이.

 

유심히 보니 가방을 메지 않거나 보조가방 정도로 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더러 정장 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걷는 사람들도 있고;;

 

 

'택시로 가방 운반해드립니다. -다음 알베르게까지 7유로'

오는 길에 이런 광고 문구를 여럿 봤는데

무거운 짐이 버거운 어르신들은 이런 걸 꽤 많이 이용하시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각종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많아지는 걸 피부로 느낀다.

 

 

# 고비인 산타 이렌느(Santa Irene)를 지나고 페두르조(Pedrouzo/Arca O pino) 에 도착했다.

12시쯤이니 알베르게가 열릴 때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는 순서대로 입구에서부터 배낭이 길게 늘어서있다.

 

배낭을 놓고 쉬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북쪽길에서 뵌 듯한 노부부신데 정확히 생각은 안 난다.

인사를 하고 내려가는 찰나, "너 북쪽길 걸은 애 맞지??"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인사하신다.

"네~  (그런 것 같은데 어디서 뵈었더라..빨리 기억나랏)" 

"우리 세르바유에서 봤잖아~ "

할아버지도 거드신다.

"맞아, 내가 너는 2층에서 자고 나는 옆 침대 아랫층에서 잤었어."

 

헉;;;;;;; 

두 분이 번갈아가며 나를 기억해내시는 순간  생각났다.

내게 미국인이냐 물으셨던 그 분들임이;;;

한 번 보고 기억하시다니. 

체력을 봐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 캐나다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신체나이가 나보다 젊으신 것 같다.

 

"근데 베드버그 물린데는 괜찮니?"

헉;;;;;;;

어떻게;;;;;;;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심지어 내가 침낭도 버리고 병원에 갔었다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오다가 한 알베르게에서 소식을 들으셨단다.

북쪽길에 소문이 쫙 퍼졌나보다. 아효....창피해라.....ㅠ

 

이 분들은 이번 까미노가 3번째시다.

프란세스길, 포르투갈길, 그리고 이번 북쪽길까지.

제작년부터 매년 오시는데 내년에는 리옹에서부터 생장까지 걸을 예정이시란다.

역시 한 달만에 여기에 도달한 비결이 있었다. 그야말로 까미노 전문가!

걸었던 세 곳 중에는 이번 북쪽길이 경치도, 사람들도 가장 좋았다고 하신다.

각각의 길마다 다른 매력이 있겠지만,

다소 험하고 어려워도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길을 택하는 듯 싶었다.

 

아르주아에 들어서서 깜짝 놀라지 않았냐며,

당신들께서는 벌써 세 번째인데도 놀랍다고 하신다.

그리곤 사람이 북적이는 그 길을 다시 가는 crazy한 짓은 하지 않을거라며ㅋ

  다시 한번 생각해도, 참 잘한 결정이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