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소리와 눈에 닿는 손전등 빛때문에 잠이 깼다.
휴대폰을 보니 아직 5시다.
새벽 서너시에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만 이것도 참 생경한 풍경이다.
부시시 일어나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차 몸이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건조대로 가는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말그대로 별 천지다.
이렇게 반짝반짝 가까이서 빛나는 별을 본 것도 처음이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장관은 정말 처음 본다.
'이렇게 새벽길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을 따라 새벽길에 올랐다.
아직 컴컴해서 한치 앞이 안 보이지만 괜찮다. 사람이 많으니까;;
손전등 켠 사람들을 따라 열심히 걷는데, 사람이 많다 많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북쪽길은 화살표를 보고 가고 프랑스길은 앞 사람을 보고 간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화살표도 많이 있지만 50m에 한 명꼴로 가는 듯.
배낭 행렬을 보고 있자니 동네 뒷산 오르는 느낌이다.
길도 굉장히 평탄해졌다.
그런데다 사람도 많으니 페이스조절도 어렵고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잘 파악이 안 된다.
멈춰서서 경치를 보거나 맘대로 쉴 여유가 쉬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북쪽길 걷기를 정말 잘 했다.
열심히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비비카다!
사람들이 계속 지나는 길에서 얼싸안고 난리가 났다ㅋ
콜롬브레스에서부터 계속 만나다가 세르바유 이후로는 보지 못했는데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자기와 같은 종류의 큰 배낭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어 자세히 봤더니 나 같아서 얼른 불렀단다.
오늘 산티아고까지 가는 것이 목표란다.
워낙 빨리 걷는 그녀지만 오늘만큼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다고 했다.
훌륭한 스페인어 선생님이 되어준 그녀, 부디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도착하길:)
# 중간중간 마을도 많이 지나고
바가 아침 일찍부터 열어 지나는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8-9km쯤 걸어 A Calle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쉬었다.
바도 북적북적하고 정신이 없다.
테라스에 앉아 있으려니 까미노를 따라 사람들이 계속 지나간다.
끊.임.없.이.
유심히 보니 가방을 메지 않거나 보조가방 정도로 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더러 정장 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걷는 사람들도 있고;;
'택시로 가방 운반해드립니다. -다음 알베르게까지 7유로'
오는 길에 이런 광고 문구를 여럿 봤는데
무거운 짐이 버거운 어르신들은 이런 걸 꽤 많이 이용하시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각종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많아지는 걸 피부로 느낀다.
# 고비인 산타 이렌느(Santa Irene)를 지나고 페두르조(Pedrouzo/Arca O pino) 에 도착했다.
12시쯤이니 알베르게가 열릴 때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는 순서대로 입구에서부터 배낭이 길게 늘어서있다.
배낭을 놓고 쉬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북쪽길에서 뵌 듯한 노부부신데 정확히 생각은 안 난다.
인사를 하고 내려가는 찰나, "너 북쪽길 걸은 애 맞지??"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인사하신다.
"네~ (그런 것 같은데 어디서 뵈었더라..빨리 기억나랏)"
"우리 세르바유에서 봤잖아~ "
할아버지도 거드신다.
"맞아, 내가 너는 2층에서 자고 나는 옆 침대 아랫층에서 잤었어."
헉;;;;;;;
두 분이 번갈아가며 나를 기억해내시는 순간 생각났다.
내게 미국인이냐 물으셨던 그 분들임이;;;
한 번 보고 기억하시다니.
체력을 봐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 캐나다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신체나이가 나보다 젊으신 것 같다.
"근데 베드버그 물린데는 괜찮니?"
헉;;;;;;;
어떻게;;;;;;;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심지어 내가 침낭도 버리고 병원에 갔었다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오다가 한 알베르게에서 소식을 들으셨단다.
북쪽길에 소문이 쫙 퍼졌나보다. 아효....창피해라.....ㅠ
이 분들은 이번 까미노가 3번째시다.
프란세스길, 포르투갈길, 그리고 이번 북쪽길까지.
제작년부터 매년 오시는데 내년에는 리옹에서부터 생장까지 걸을 예정이시란다.
역시 한 달만에 여기에 도달한 비결이 있었다. 그야말로 까미노 전문가!
걸었던 세 곳 중에는 이번 북쪽길이 경치도, 사람들도 가장 좋았다고 하신다.
각각의 길마다 다른 매력이 있겠지만,
다소 험하고 어려워도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길을 택하는 듯 싶었다.
아르주아에 들어서서 깜짝 놀라지 않았냐며,
당신들께서는 벌써 세 번째인데도 놀랍다고 하신다.
그리곤 사람이 북적이는 그 길을 다시 가는 crazy한 짓은 하지 않을거라며ㅋ
다시 한번 생각해도, 참 잘한 결정이었다ㅋ
'2010 > Camino de Santiago-del Nor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37.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Monte de Gozo-Santiago de Compostela:4.86km) (0) | 2010.10.31 |
---|---|
#36. 카페 콘 레체 다섯 잔만큼(Pedrouzo-Monte de Gozo : 15.12km) (0) | 2010.10.30 |
#34. Francés Culture Shock(Arzua) (0) | 2010.10.29 |
#33. 마지막 북쪽길을 대하는 자세(Sobrado-Arzua : 22.35km) (0) | 2010.10.29 |
#32. 수도원 알베르게를 향해(Miraz-Sobrado : 25.46km) (0) | 2010.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