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32. 수도원 알베르게를 향해(Miraz-Sobrado : 25.46km)

yurinamu 2010. 10. 27. 21:36

 

 

 

# 이른 아침 솔솔 풍기는 빵 굽는 냄새에 눈을 떴다.

다들 졸린 눈이지만 호스피탈레로가 내어주시는 따뜻한 카페콘레체와 빵 한 조각에 미소가 한가득이다.

7시 반까지 아침을 먹고 출발해야 하는 알베르게 규정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느 때처럼 스틱을 잡으려는데 이상하게 손이 잘 안 쥐어진다.

이상해서 손가락을 보니 모기를 7방이나 물렸다.

침낭에 쏙 들어가 손만 내놓고 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만 집중공격 당한 것이다.

스틱을 잡으며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가렵고 화끈거린다.

고것 참, 마디 마디 골고루도 물었다.

그래도 지난 번처럼 눈두덩을 물어 밤팅 만들어 놓은 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 산 공기가 상쾌하긴 하지만 아직 어둑어둑 한 것이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다.

돌산과 나무가 우거진 곳을 지나는 데 영화<수면의 과학>에서 본 장면같다.

아마 종말로 가는 꿈이었나~ 그럴거다ㅋ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어 걷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선선하니 발걸음도 가볍고 그리 힘들지 않았다.

 

 

 

 

 

 

# 한 번도 쉬지 않고 12km를 넘게 걸었는데 아직 10시 반도 안 됐다.

지나온 마을이 다 농가인데다 집도 띄엄띄엄 있어 바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계속 가려는데 어느 흰색 집  뒷마당과 현관에 맥주 박스들이 쌓여있다.

문은 굳게 잠긴데다 바 표시가 없어 긴가민가 하다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일반 가정에서 저렇게 술을 마시진 않을테고..

11시까지만 쉬다가 아니면 계속 가지 뭐'

 

바람이 점점 세게 불어 점퍼를 주섬주섬 꺼내는데 언덕 아래서 스페인인 자전거 순례자들이 온다.

뒤이어 파스칼과 시몬, 스페인 친구들 3명이 무리로 올라온다.

"엇, 여기에 바 있는지 알고 있었어?"

"응?여기 바 맞아? 난 그냥 맥주 박스 쌓여 있길래 바인가 싶어서 기다려봤지하하."

파스칼은 나의 찍기 실력에 놀라워하며 계속 웃는다.

왜냐하면 그는  '감'보다 '정보'에 익숙한 독일인이니까.

노란책에 나와있기로는 여기 이후로 7~8km 구간까지 쉴 곳이 없기 때문에 

가급적 들렀다 가야 하는 바라고 일러준다. 다행이다.

11시에 오픈한다는 정보까지 듣고 나니 기다리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8명이 한꺼번에 바 주인을 맞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인 아주머니는 문 열기가 무섭게 커피 끓이고 물건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저마다의 산티아고 계획에 대해 얘기하며 티타임을 가졌다. 

등산복을 껴입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들고 있으니 산장에 놀러온 원정대들 같다. 

이번 원정대 턱은 스페인 친구가 냈다.

 

 

#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음 길을 걷는데 오르막이 계속이다.

가파른 산길과 아스팔트를 번갈아 지나 7km 정도를 더 걷자 Meson이 나왔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왜 그렇게 커피가 당기는지..

 

까미노를 조금 벗어나 마을에 있는 바에 들렀더니

독일인 아저씨 세 분과 프랑스인 할아버지&스페인인 할머니가 와 계신다.

점심때도 가까워 와 간만에 또르띠야를 주문했는데 메뉴에 없단다ㅠ

포베냐에서였던가, 어느 바에서 주인으로부터 추천받은 또르띠야를 맛보고 완전 반했다+.+

치즈가 들어간 따뜻한 또르띠야가 먹고 싶었는데ㅠ

 

할 수 없이 쵸리소 보까디요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시몬이 거의 실신 직전의 얼굴로 헥헥거리며 바를 들어온다.

"도대체 오르막이 안 끝나, 오르막이.. 켁,켁;;"

힘들어서 중간에 파스칼을 먼저 보내고 올라오는데 길까지 잃었다며 넋 나간 표정으로 말한다.

숨을 고른 뒤 그녀도 하몬이 든 보까디요를 주문했다.

나란히 나온 보까디요....둘다 웃음이 터졌다.

어제 본 그 질긴 빵이다;; 벌써부터 턱이 아린다.

쵸리소와 함께 먹다가 결국 둘다 볼까지 씹었다ㅠ

 

 

 

# 6~7km를 더 걸었다.

힘이 부쳐 다리가 풀릴 때쯤 저 멀리 수도원 꼭대기가 내려다 보였다.

 

들어가 보니 굉장히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건물같다.

거대한 돌로 지어진데다 천정도 높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 입이 헤 벌어질 정도로 멋있긴 하나

여기저기 발길 닿는데로 쏘다녔다간 길 잃기 십상이었다.

알베르게 미아가 되긴 싫었다. 

 

조신하게 알베르게로 들어갔는데 아주 엄한 표정의 신부님이 안내해주신다.

좀처럼 웃지도 않으시고 뭘 여쭤봐도 말씀이 없으시다.

크레덴시알에 세요를 쾅 찍으시더니 영어로 된 수도원 내부지도를 건네주신다.

모기소리로 감사인사를 드린 후 나왔다.

시몬도 다녀왔는데 자기도 무서워서 혼났다고ㅋ

그도 그럴것이, 미사 가고 싶다며 시간을 여쭤봤는데 '없다' 딱 한 마디 하셨단다. 무서운 신부님;;;

 

그건 그렇고 수도원에 미사가 없다니ㅠㅠ 

시몬과 함께 내일 미사 시간을 알아보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생각보다 내부가 깨끗하진 않았다.

벽에 생긴 곰팡이를 피해 자리를 엄선하고 일회용 시트까지 깔았다.

샤워실과 화장실도 하나 뿐인데다 매우 비좁고 지저분해 순례자들도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 저녁 때가 되어 독일인 칼, 크리스티아나, 파스칼, 시몬과 함께 주방에서 파스타를 해 먹었다.

슈퍼에서 사온 따뜻한 바게트를 올리브 오일에 푹 찍어 먹고,

늘 좋아라 하는 블랙올리브를 폭풍섭취하고 있으니 시몬이 물어본다.

 

"한국 사람들도 주로 이런 걸 먹고 살아?"

 

헉;;;;;; 아니 그렇지 않아;;;;;ㅠ

항상 보면 유럽인식으로 먹는다며 한국에서도 그런 줄 알았단다;;

졸지에 한국인 식단에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킨 1인이 됐다.

좀 가리는 척이라도 할 걸 그랬나...

 

주방에 스페인 3인방까지 가세해 바글바글 모였는데

저마다 미사 시간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7시? 8시? 다음날 7시? 이건무슨;; 

결국 용감한 스페인 아저씨가 다른 신부님께 여쭤보고 알아낸 결과

오늘 오후 7시 성가대가 노래하는 시간이 있고

내일 아침 7시 반에 미사가 있단다.

그런데 어디서 하는지 모르겠단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이 있으니 내일 아침 다시 알아봐야겠다.

'제발 미사 볼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