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31. 다시 만난 사람들, 다시 만날 사람들(Baamonde-Miraz : 14.9km)

yurinamu 2010. 10. 27. 12:17

 

 

 

#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이라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신발장을 보니 남은 등산화는 내 것까지 딱 4켤레 뿐이다.

같은 방을 쓴 세 분 모두 어르신이었는데 새벽에 준비하시는 듯하더니

다 출발하셨나보다. 짐도 참 조용히, 신속하게 싸신다.

언제쯤 난 그런 요령이 생길까나...

 

어제 또 내가 저녁 먹는 걸 지켜보던 샤방남과 여전히 까칠한 선글라스남은

내가 알베르게를 나설 때가 다 되어서야 부시시하고 일어나 내려온다.

'얘들아, 오늘 40km 간다며...'

어제 아예 자리잡고 앉아 쳐다보던 샤방남과 일정얘기를 잠깐 했다. 

오늘 소브라도까지 40km정도를 가고 산티아고에 3일 뒤에 도착할 거란다.

피스테라까지 걸어서 갈거라 25일 비행기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하면서도

산티아고 갈 생각에 설레는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25일 아웃하는 산티아고 공항에서 운이 좋으면 서로 만날 수도 있겠다며

언제나처럼 기약없는 까미노식 인사를 나눴다.

 

 

# 구름이 껴서 흐리긴 하지만 선선하고 바람이 제법 불어 오히려 걷기에 딱 좋다.

알베르게를 나올 때 다른 친구들은 오늘은 해가 안 날 것 같다며 불평하던데

그러고 보면 유럽 친구들 해를 몹시 좋아한다.

일부러 태우려는 사람들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자(=나)

 

오르막이 있긴 해도 비교적 완만해서 금방금방 지났다.

San Alberte는 금방 나왔는데 다음 마을이 안 나타나 걷고 걷고 또 걷고.

스페인 아저씨 아줌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숲길을 지났다.

나무로 된 작은 집 앞에서 아줌마가 갑자기 멈춰 서시더니 내게 사진을 찍어주시겠단다.

언뜻 보기에 화장실 같아 좀 의아했지만 찍어주신다니 흔쾌히 응했다.

그리곤 스페인어로 뭐라 설명해주시는데 모르겠고;;

길 물어볼 때 현지인과 대화하던 신공을 발휘해 알아들은 결과

이 곳은 집집마다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세워둔 창고,

즉 우리나라의 곳간 같은 것이다.

이름은 오레오(Horreo)다.

아줌마가 처음엔 오리오로 알려주셨는데 아저씨가 아니라며 정정해주셨다ㅋ

 

화살표가 나오지 않는 곳에서는 내 지도를 보며

아줌마 아저씨와 머리를 맞대고 가장 그럴듯한 길로 갔다.

지금 생각해도 '이렇게 무모할데가...' 싶지만 까미노에서는 육감이 거의 들어맞았다.

앞서가던 아줌마는 배낭에서 피스타치오를 꺼내 내게 한 움큼 쥐어 주신다.

간만에 맛보는 견과류라 맛나다.

다람쥐처럼 껍질을 하나하나 깨 먹으며 숲길을 걸어갔다.

 

 

 

 

 

 

# 중간에 잠깐 쉬었다 가느라 아줌마 아저씨와 거리가 좀 벌어졌다.

저만치 보이는 집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신다.

이쪽으로 걸어오시더니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시곤 비쥬를 청하신다.

멈칫하자 갑자기 목을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거다.

아줌마 아저씨라도 보이면 도움을 청할텐데 아무도 없다.

위협을 느낄 찰나 힘으로 겨우 빠져나와서는 잽싸게 숲길로 달렸다. 젠장.

 

아까 오던 길에, 까미노 화살표 옆에 서서

지나는 순례자들을 향해 격려인사를 힘차게 외쳐주시던 아저씨를 봤다.

소일없는 이 곳에서 손에는 꽃 한 송이를 든 채 

옷도 점잖게 빼어입고 나오신 걸로 보아 이 인사가 그 분의 중요 일과인 듯 했다.

그 아저씨께 감사한 마음으로 마을 분들께 인사도 더 열심히 했는데.. 

긴장이 좀 풀렸었나보다.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당황해서 앞만 보고 와서인지 그만 화살표를 놓쳤다. 에휴ㅜ

어딜가 두리번거리는데 땅바닥에 피스타치오 껍질이.....ㅋㅋ

아줌마가 길을 알려주신 셈이다. 이건 무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피스타치오 껍데기가 보이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저만치 앞에 빨간색, 연두색 배낭커버가 보인다.

아줌마 아저씨다. 아, 살았다ㅜ

 

 

# Santa Leocadia에는 마치 인포센터처럼 세요와 컴터를 놓고 요깃거리를 파는 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분위기도 썩 괜찮지만

모든 순례자들이 거쳐갈 수 있도록 6~7km전부터 표지판을 세워두셨다.

잠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가려는데

프랑스인 할아버지와 스페인인 할머니 커플이 마침 나오신다.

우리 작은 딸내미 이제 왔냐며 반갑게 인사하신다. 

두 분 체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하신 것 같다.

 

 

 

 

 

 

# 소똥이 가득한 Xeixon(Seixon)을 지나 Miraz에 들어섰다.

근처 바에서 다함께 기다리다가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호스피탈레로 세 분 모두 영국인이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글로 쓰인 안내문을 건네주신다.

운영시간과 이용시 안내사항 등을 상세히 적은 건데 심지어 코팅까지 해 두셨다.

간만에 보는 정자체 한글이 반갑고 새삼 예뻐 보인다.

 

기부제 알베르게인 이 곳은 영국의 NGO로부터 후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단다.

미라즈가 워낙 작은 마을이라 알베르게 주변에는 바가 딱 하나 있고

파스타, 소스, 올리브, 스프 정도의 간단한 식료품을 알베르게 내에서 구입할 수 있다.

 

2시가 좀 넘으면 클랙슨을 울리며 빵차가 온다.

시골빵 답게 크기도 정말 크다. 하나로도 3~4일은 너끈하겠다. 

작은 빵이 없어 고민하는데 내 뒤에 서 있던 아저씨가 큰 빵을 하나 사서 반을 뚝 잘라 나눠주셨다.

빵값을 드리려는데 '스페인 빵을 맛볼 수 있도록 선물하는 것'이라며 한사코 거절하신다.

스페인인 아저씨는 아들과 함께 이 바로 전 마을인 바몬데부터 걸어오셨다고 했다.

쉴 때는 항상 부자(父子)가 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상깊었다.

 

이 빵은 겉껍질에 빵칼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다.

가져간 스위스아미 나이프를 직각으로 세워 썰어야 겨우 잘릴 정도였다.

속살도 쫄깃쫄깃하다못해 질기다.

파스칼, 시몬과 저녁 때 파스타를 만들어 함께 먹었는데

저마다 빵을 열심히 씹느라 식사시간이 1시간 반이나 걸렸다.

 

 

# 오랜만에 알베르게 방명록를 썼다. 

앞서서 쓴 한국인은 4명, 내가 이 곳 방문록을 적는게 5번째인가보다.

열심히 쓰고 있는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신디였다.

부지런히 걸어 벌써 이만큼을 온 것이다. 산티아고 갈 때까지 못 볼줄 알았는데 너무 반가웠다.

 

"나도 베드버그한테 물려서 완전 고생했어. 다 세탁하고 난리도 아녔어ㅜ"

신디가 만나자마자 하소연을 한다.

히욘에서 병원을 가다 잠깐 마주쳤을 때 내 얘기를 들은 터였다.

지금은 괜찮아졌다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준다.

그래서인지 몹시 털털했던 신디는 이전처럼 짐도 아무데나 내려놓지 않는다.

이전 알베르게에서 얻은 일회용 시트를 깔고 옷도 부지런히 세탁한다.

아마도 나처럼 호되게 당했나보다.

 

옷을 깨끗이 빨아 널어 놓은 뒤 성당을 둘러보고 왔다.

호스피탈레로가 열쇠를 가지고 있어 원하는 사람은 말씀드린 후 들어가 볼 수 있다.

파스칼, 시몬은 카톨릭은 아니지만 성당 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같이 간 김에 기도도 드리고 나왔다.

마을을 지나면서 성당을 꼭 보게 되는데

그 마을의 특색에 따라 성당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 같다.

내일은 수도원 알베르게라고 하는데~ 어떤 곳일지 너무 궁금하다.

미사도 꼭, 꼭 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