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28. 공포의 N-634(Mondonedo-Gontan : 16.39km)

yurinamu 2010. 10. 26. 00:13

 

 

 

# 다들 동 트기 전부터 서두르더니 알베르게가 텅 비었다.

인사하고 짐 꾸리고 하다보니 어느덧 9시,

내가 제일 늦게 나왔다.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오늘도 또 헤맸다.

동네가 클수록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갈 때나 다음날 길을 떠날 때 가장 어렵다. 

친숙한 N-634도로 표지판이 있어 그 길로 들어섰는데 갓길이 조금밖에 없다.

이 길이 아닌가 싶다가도, 늘 그랬듯 가다보면 화살표가 나오겠지 싶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Lugo라고 쓰인 표지판 화살표대로 쭉-쭉-

 

그런데 가도가도 나오지 않는 노란 화살표.

차만 씽씽 달리고 계속 산등성이를 타는 거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바보야...

그간 까미노 루트 중간중간 나오는 차도를 타보긴 했지만

처음으로 차도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화물차들이 질주하는 옆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갔다.

쉬는 시간 하나 없이 계속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었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저 멀리 산자락을 따라 흰색 풍차가 돌아가고 있다.

산 모형에 꽂아놓은 레고 블럭 같다.

햇살을 받아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지만 

여기서 카메라를 꺼냈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거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굽이굽이 이어진 차도를 오르는 동안 아무런 이정표도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km 표지판만 중간중간 나오는데

이 때쯤이면 나와야 할 마을길이 안 보인다.

마주오던 경찰차도 씽- 지나가 버리고ㅠㅠㅠ

도로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엉엉 울고 싶었다.

 

어깨는 빠질 것 같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어디 하나 앉을 곳도 없다.

히치하이킹할까 생각도 1초 했다가, 좀만 더 걸어보자 싶어 몬도네도 성당에서 얻은 지도를 폈다.

비록 지명만 간단하게 써진 약도였지만

조금만 더 가면 까미노루트와 합쳐지는 곳이 있을 것 같았다.

힘을 내 최대한 속력을 내 걸어 내려왔다.

 

드디어 지도에 쓰인 지명이 나타났다!

작은 마을이긴 해도 진입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근데 지명을 다시 보니 반쯤 온 줄 알았던 오늘 여정을 거의 다 와버렸다;;;;;;

완.전.황.당-.-;;;;;;;

그럼 지금, 그 높다는 산등성이도 2개나 넘었고, 자전거도로도 탔단 말인가.

누가 들으면  뛰어온 줄 알겠다.

찻길을 탄데다 무서워서 걸음을 빨리 했더니 그런가보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걸었지만 이상하다. 

 

A Xesta를 거쳐 조개모양을 찾아 까미노 루트를 탔다.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조개 모양이 반대로 되어있다더니 정말 그랬다.

모르고 왔으면 다시 끔찍한 그 길로 되돌아갈 뻔 했다;;

침착하게 방향을 따라갔더니 드디어 순례자들이 보인다. 

 

 

 

 

# 그 때부턴 Camino de la Costa 책이 위력을 발휘,

비교적 정확히 표시된 지형대로 따라가니 곤탄(Gontan)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갈리시아 공립알베르게는 다 최근에 지은 것 같다.

반 짝 반 짝- 깔 끔 깔 끔-

일회용 시트커버도 주고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그러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넘의 축제때문에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 Abadin이란 도시에서 불과 500m떨어져 있지만 곤탄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저녁은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Tabaco에서 겨우 산 식재료로 해결하기로.

 

주방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구비된 식기가 별로 없어 엄청 붐빈다.

냄비가 없어 파스타 면을 삶는데 진땀 좀 흘렸다.

주방을 쓰려고 2명이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그 중 한 명을 어디서 본 듯하다. 

어디서 봤더라???;;;;;;;;;;;;;;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파스타 면 뒤적이다 번뜩!

까미노 초반에 만났던 독일인 아저씨다.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았던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

그 분신 같은 선글라스를 벗어서 못 알아봤나보다. 근데 쓴 게 더 어울린다.

오늘도 역시 표정이 까칠하다. 항상 웃던 스페인 아저씨와 같이 다녔었는데 고국 친구를 만난 모양이다.

동행 녀석은 선글라스남과 달리 항상 샤방한 미소를 하고 다닌다.

참 신기한 조합이다.

 

40분만에 파스타 완성!

식기가 부족하니 간단한 요리도 참 힘들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에서 처음 먹는 스파게티다. 초반에 라자냐만 자주 먹은 것 같다.

테이블에 가져가니 선글라스남은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고

샤방한 동행남은 내가 먹을 음식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뭐 신기한 거라도 있나.......?;;;;;

it's good을 연발하며 계속 쳐다본다.

동양인은 별나라 음식만 먹는 줄 알았나보다.

 

내가 바게뜨를 북북 뜯어먹는데 아랑곳않고 얘기한다.

동독 출신이라며(이름을 까먹었;;) 대학 졸업 후 직업을 정하기 전에 이 곳을 오고 싶었단다.

자기소개는 여기까지고 본격적으로 남한 북한 질문부터 시작해

한국에선 뭘 먹는지까지 묻느라 식사준비는 뒷전이다.

선글라스남은 뇨리삼매경이고 이 아인 아예 빵을 가져와 같이 씹으면서 질문을 생각한다.

서로 좀 닮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을 보는 것 같다.  

 

 

# 저녁을 먹고 바싹 마른 빨래도 걷고 나니

오늘 할 일을 마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알베르게 도착해서 씻고 잠자기 전까지인 이 시간이 가장 좋다.

2층 침대에 올라가 볼타렌(Voltaren)으로 통증이 있는 곳을 마사지했다.

한국에서 처음 사 본 맨소래담 냄새를 맡았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

여러 까미노 선배들의 추천으로 샀건만 파스도 못 붙이는 내게 이건 거의 홍어급이다.

주인 잘못만나 뚜껑연지 3초만에 제 운명을 다한 맨소래담은 산 세바스티안 알베르게에 살고 있다.

다리통증을 그냥 짐이려니~하고 지니고 다니던 어느날 스페인 친구들이 추천해준 것이 볼타렌이다.

아주아주 약한 파스향이 나는 반투명 크림이다. 주변을 보니 너도나도 이걸 쓴다. 

순례자들이 거의 다 도착해 안정을 찾는 오후 5시쯤엔 누가 지나가더라도 볼타렌 냄새가 났다.

까미노 향수 볼타렌을 여느 때처럼 다리에 펴바르며 간절히 기도한다. 

'내일 아침 깨어날 때 쥐나더라도 덜 아프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