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뜨자마자 0.1초만에 든 생각 - '아, 여기서 마지막이다.'
3일 동안 머물며 많이 안정을 찾아서일까, 의미있는 곳이어서일까.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다.
무거운 배낭이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실감이 났다.
주인 아저씨가 만들어주신 따뜻한 카페 콘 레체를 마시고 체크아웃을 했다.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반짝반짝했던 주변 건물들과 돌담길을 잊지 못할 것 같다.
# 바로 우체국으로 가 짐을 부치기로 했다.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내면 15일간 짐을 맡아준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여름옷 2벌, 기념품, 우비를 포장해 창구에 넘겼다.
분실되지 않고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이름 옆에 peregrino라 쓰고 별도 그려넣었다.
어제 봐 두었던 대로 아빌레스행 버스를 타고 마을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알베르게는 아직 열지 않았다.
성당과 박물관을 둘러보다 Casa de cultural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들어가봤다.
인터넷도 할 수 있고 도서관이 있어 책도 빌려 볼 수 있었다.
혹시 까미노 관련 책이 있나해서 찾아봤더니 한 칸이 전부 까미노 책이다.
El Pais 출판사의 Camino del Norte책도 발견했다!
물어봤더니 부분복사도 가능하단다. 이런 행운이~ *.*
책을 전용엘레베이터로 올려보내고
나는 복사실까지 계단을 한 층 걸어올라가야 하는 특이한 시스템을 거쳐 2층으로 갔다.
사서 아저씨께서 복사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잔돈까지 맞춰 주셔서
기계가 거스름돈을 날름 먹는 일 없이 복사를 마쳤다.
아빌레스부터 산티아고까지 루트가 나온 부분만 복사했는데도
길의 특성과 높낮이, 바의 위치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지도만 있어도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정보라곤 아무것도 없는 내겐 정말 가뭄에 단비같은 유용한 정보다.
이런 책은 영어로라도 제발 번역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 주변에 오비에도 대학교가 보인다.
건물 안에 들어갔는데 입구에 바로 강의실이 있고 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수업 마치고 나오던 학생들 모두, 배낭 메고 스틱 든 채 들어오는 나를 쳐다본다.
경비아저씨께서 오시더니 무슨 일이냐 물으신다.
입학시험 보러 온 동양인 학생으로 착각하신 듯 하다.
그냥 학교 구경하고 싶다고 했는데 스페인어로는 안 되겠다 싶으신지
"여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이리와 어서~!!"
하며 주변에서 서 있는 학생들을 마구 소집해 오셨다.
결국 난 학생들 열 댓명에 둘러싸여 얘기하고 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본교는 오비에도에 있고 여긴 강의만 하는 곳이란다.
여기서는 본교 정보를 얻기가 어렵단 말에 내부 구경만 하고 나왔다.
강의실을 보니 스페인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다.
히욘에서 3일이나 묵은데다 버스를 타고 왔으니 그럴 수 밖에;;
짐을 풀려는데 가방 놓기가 두렵다.
그동안 너무 좋은 곳에서 묵었나보다.
짐을 꺼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옆 침대에는 물건이 다 널브러져 있다.
청바지에 드라이기까지 있는 걸 보니
걸은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얼마 안 남았거나 둘 중 하나다.
주인이 들어왔는데 보기에도 불편한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화장까지 했다.
보기 드문 독일 친구였다.
☞ 까미노 중 당황스러울 때
화살표가 안 나올 때
걸어왔는데 km수가 오히려 늘어났을 때
독일 친구들이 길 물어볼 때
현지인이 뭘 자꾸 물어볼 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길을 데려다주려 앞장설 때
시에스타 시간이 끝나도 상점이 문을 열지 않을 때
바에서 유일하게 아는 메뉴가 없을 때
인포센터에서 위치를 모른다고 할 때
알베르게가 다 찼을 때
☞ 까미노 중 가장 두려운 세 단어
Siesta, Fiesta, Comple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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