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27. 천사를 만나다(Ribadeo-Mondonedo : 35.68km)

yurinamu 2010. 10. 25. 12:40

 

 

# 오늘이 바닷가를 지나는 마지막날이다.

이제 내륙으로 들어서면 피스테라에 갈 때까지 파란 바다가 그리워지겠지:)

알베르게 앞에서 바다 보고 가려고 서둘러 나오는데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물결따라 배가 일렁이는 게 보일 정도다.  

금방이라도 비가 후둑후둑 떨어질 것 같았다.

 

마을 중심가까지 10분 남짓 걸었을까, 예상대로 비바람이 몰아친다.

정류장으로 들어가 하루에 3번만 오는 Lugo행 버스를 잡아 타려는데 기사님이 손짓한다.

Villaba를 거쳐 Lugo로 가는 버스는 오늘 14시 40분, 한 대 뿐이란다.

떠나기도 전에 맥이 탁 풀렸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ㅜ

 

 

# 할 수 없이 인포센터가 열릴 때까지 바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여느 마을에서 보던 바보다 좀 큰 규모라 사람들이 아침부터 식사를 하러 온다.

이른 아침 토스트와 우유, 쇼콜라를 바에 와서 먹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언젠가 동행한 친구와 스페인의 바 시스템에 애기를 한 적이 있다. 

한 마을에도 바가 여러 개씩 있는데

다들 바에서 아침도 사 먹고 저녁도 사먹고 한다. 거의 맥주와 타파스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 뭘까,

작은 마을에 있는 바들은 도대체 어떻게 운영이 되는 걸까.  

고민 끝에 '공동체로 운영하나?' 하는 터무니없는 추측성 결론에 이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뭐 그러고도 시에스타, 피에스타 챙겨가며 잘 살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침으로 마을사람들이 진한 쇼콜라에 설탕묻힌 츄러스를 먹는 걸 보고 나도 주문해봤다.

사실 히욘에서도 진한 쇼콜라를 맛본 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 그날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바 앞에 세워둔 가판과 테라스 의자가 저만치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몰아쳐 경찰들까지 나왔던 날.

나중에도 비 올때면 걸쭉하리만치 진한 쇼콜라가 생각날 것 같다.

밀린 일기도 쓰고 자료정리도 하며 장장 2시간을 앉아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쳐 심란했는데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 인포센터가 열었겠지 싶어 나가는데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혹시나 해서 가봤더니 12시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어제 문이 닫혀 있는데다 다시 나와 볼 겨를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렇게 때맞춰 오는 행운이:)

 

성당이 커서 그런지 사람들도 많이 왔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껴서 미사를 봤다.

이제 다국어미사책을 들고 어디쯤인가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왠만큼 흐름을 보고 따라갈 수 있다.

간만에 보는 미사인데다 그간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인지 내내 마음이 짠했다.

 

마을사람들이 나가면서 배낭과 스틱이 놓인 걸 보고는 미소를 짓는다.

내가 스틱을 잊을까봐 바닥에 둔 걸 손수 집어 챙겨주시는 할머니,

어깨를 두드리며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네시는 아줌마 아저씨들께 정말 감사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가리비 달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인사해줘야겠다:) 

 

 

  

 

 

# 이번엔 몇 번이고 확인한 끝에 제대로 버스를 탔다.

짐을 싣는데 독일인 커플 크리스티아나와 칼도 같이 탄다.

어제 같이 바닥신세를 졌던 친구들이다.

둘도 천천히 쉬엄쉬엄 걷다보니 예상보다 많이 걸려 일정이 안 맞게 됐다며 아쉬워한다.

우리 셋은 나란히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기사님께 질문공세를 퍼부으며 몬도네도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둘은 알베르게로, 나는 인포센터를 찾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화살표가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바 앞에 서 계신 노부부께 여쭤봤더니 잘 모르겠다며 바에 물어보신다.

이 때부터 이 마을의 릴레이 길찾기가 시작되었다.

 

→ 바 주인에게 물었지만 역시 모르자

→ 길 가던 마을 소년을 냉큼 붙잡아 나를 성당 주변까지 데려다 주라고 일러서

→ 같이 성당으로 가던 중 아이 아버지를 극적으로 만나

→ 경찰서(몬도네도 알베르게를 관리하는)에 갔다가 시에스타임을 확인하고-.-;;

→ 지나가던 차를 세워 영어 할 줄 하는 여학생에게 통역을 부탁,

→ 아버지와 아들과 알베르게까지 동행했다.

 

손수 통역까지 구해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시고 데려다주신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 막 도착한 독일인 순례자 두 분이 반겨주신다.

천사표 아저씨와 아들 덕분에 무사히 왔다며 순례자들 앞에서 칭찬을 늘어놓으니

별거 아니라며 몹시 쑥스러워하신다. 주머니엔 양 손을 찔러넣고 바닥만 쳐다보며 몸을 배배~

아저씨와 아들은 알베르게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며 한 번 봐도 괜찮냐고 하신다.

순례자가 아니면 알베르게에 못 들어가니 동네에 있으면서 궁금할 법도 하다.

 

여긴 새 건물이라 유난히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아저씨와 아들은 '와~ 오우~'하며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시고ㅋ

내가 짐을 내려놓는 것까지 보신 후에야 안도의 표정으로 편히 쉬라며 발길을 돌리셨다. 

아들과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천사를 만나 너무나 감사한 오늘이다:)

 

 

 

 

# 깔끔한 알베르게 안에는 막 도착한 순례자들만 몇 들어와 있다.

"경찰들이 지금 뭘 좀 먹으러 가서 없어요. 4시쯤 올 거에요 아마."

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아저씨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갔을 때 이미 어이를 상실한 터다.

날씨가 추워져도 시에스타는 변함없이 지키나보다.

게다가 오늘도 축제란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빨래를 널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갈리시아 지방에 오니 갑자기 추워진 것 같다.

아까 소년이 바래다줬던 그 성당이 꽤 멋있는 것 같아 눈여겨 봐뒀는데

알고보니 이 마을엔 성당이 4개나 있단다.

들어가서 세요도 받고 잠시 앉아 기도도 드리고 나오는 길,

왠지 마음이 든든해진다.

 

 

 

 

# 성당을 나와 마을길을 둘러보는데 크리스티아나와 칼이 식당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내가 봤던 까미노 친구들 중 최고로 검소한 커플이었는데 식당을 찾고 있다니...

이 마을 상점이 거의 다 닫은 듯 하다.

 

괜찮아 보이는 한 식당에 들어가 간만에 메뉴델디아를 주문했다.

갈리시간 해물 수프와 닭고기 요리, 디저트, 그리고 맥주를 곁들인 풍성한 점심 겸 저녁이 되겠다.

보통 와인을 택하지만 오늘은 갈리시아 맥주인 Estrella Galicia로:) 

전채로 나온 것은 말 그대로 해물탕이다.

맛도 우리나라 음식과 너무 똑같아 깜짝 놀랐다.

해물탕 국물을 바게트에 찍어 먹으니 또 새롭다. 

메인은 닭요리 - 굽네치킨에다가 감자와 올리브유 넣고 다시 튀긴 맛이다.

디저트로 왠일로 티라미수가 있어 주문했다.

보통 요거트, 과일(사과나 바나나), 아이스크림, 푸딩이 있는데

거의 모두 슈퍼에서 갓 사온 제품을 그대로 떼어 내어 준다.

쟁반에 바닐라 요거트 하나를 받쳐 내오는 진풍경이란~

사과 한 알과 과도를 고이 내어주는 곳도 있다고 하니

그것에 비하면 푸딩이나 요거트는 감사한 디저트다.  

그런데 여기서는 감동적이게도 직접 만든 진짜 티라미수를 준다+.+ 

 

점점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작은 것도 여기 까미노에서는 참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