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20. 맛있는 초대(San Esteban de Leces-La Isla : 20.26km)

yurinamu 2010. 10. 23. 23:23

 

 

# 포르투갈인 자전거 순례 가족과

마치 한 식구처럼 모여 아침을 먹은 뒤 알베르게를 출발했다.

 

작은 마을들을 지나 차도도 타고 숲길도 지났다.

항상 산길이 껴 있는 까미노.

길이 험할수록 튼튼한 신발에게 새삼 고맙다.

 

 

# Prado가 나오길 바랐는데 다른 지명이 계속 나왔다.

차도(N-632)를 따라 계속 가니 산장같이 생긴 인포센터가 있다.

외관은 꼭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보던 곡식창고 같이 생겼다.

문을 아직 열지 않은 것 같아 기웃거리는데 누가 앞에 차를 댄다.

차에서 나오길래 동네 주민인 것 같아 물었다.

"여기, 혹시 언제 여는지 아세요?"

"네~ 지금요" 하며 손에 든 키를 보여 준다.

 

안에 들어갔는데 이런 반전이 없다.

밖에서 볼땐 영락없는 창고였는데 안은 마치 서재처럼 아늑하고 조용했다.

아저씨는 벽에 붙은 지도에 핀 조명까지 맞춰가며 설명해주셨다.

조명 아래서 진지하게 길을 묻고 대답하니 무슨 보물섬 찾으러 가는 느낌이다.

지금 도로에서 벗어나 까미노 루트를 타면 멋진 절경을 볼 수 있을거라는 것도 귀띔해주셨다.

 

 

 

  

#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긴 했지만 원래 까미노 루트로 접어드니 바다가 확 펼쳐졌다.

해안을 따라 길이 쭉~ 나 있어 비교적 평탄하고 파도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 바위에 한참 앉아있었다.

멍 하니 앉아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것도 꽤 괜찮았다.

그냥,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그만 일어서려는데 이상하게 자꾸 미련이 남는다.

앉다 걷다를 반복하다 결국,

오늘 세르바유까지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해안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로 했다.

 

 

 

 

 콜룽가에서 벗어난 라이슬라(La Isla)라는 해안가 마을에 도착했다.

물어물어 겨우 알베르게를 찾았는데 헤닝이 바로 앞서 도착해 있다.

뒤이어 나도 인적사항을 적는데 호스피탈레로가 스페인어로 자꾸 뭘 설명하신다.

헤닝이 알았다고 웃으며 대답하기에 뭐라 하신건지 살짝 물어봤다.

"음, 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여기가 아닌 것 같애."

아 참 너도 스페인어 모르지-.-;;;

화살표를 따라가는 헤닝을 따라 가니 진짜 알베르게가 나왔다.

아까 거긴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호스피탈레로 할머니의 가정집이었다.

 

 

 

 

# 같이 들어가니 요리를 하고 있던 한 청년이 내게도 독일어로 인사한다.

헤닝과 일행이라 독일인인 줄 알았단다.

'난 네가 독일인인 줄 알았단다...'

 

스위스 루체른에 살고 있는 이유르츠는 불어, 독어,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스페인어는 못하지만 페레그리노들과 대화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스위스는 언어배우기에 참 축복받은 환경인 듯 하다.

작년엔 프랑스길을 자전거로 다녀왔고 올해는 해안길 중간까지, 그리고 내년 봄에 산티아고까지 간단다.

간단히 휴가를 내고 떠나올 수 있는 곳이 이런 곳이어서 참 좋겠다:)

 

 

# 세탁기를 발견하고 간만에 빨래를 하기로 했다.

헤닝이 같이 하자며 빨래를 몽땅 넣었는데 사용법을 몰라 5명이 달라붙어 30분동안 낑낑거렸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커피도 마시고, 해변에도 다녀왔는데 그칠 생각을 않는다.

그렇게 2시간째 계속 거품만 내고 있는 세탁기...

그래도 명색이 세탁기면 돌아가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자기 할일을 온전히 세제거품에게 떠맡기다니 괘씸하다. 

기다리다 지쳐 아예 널브러진 나를 보고 빙긋 웃어보이는 헤닝.

"우리 빨래 완전 깨끗해지겠네~"

넌 참 속도 좋다.. 

 

그런데 3시간 가까이 빨랫감이 거품만 물고 있자 헤닝도 조금씩 걱정이 되는지 세탁기 앞을 왔다갔다 한다.

투명창을 들여다보며 쪼그려 앉아있으니 다들 또 문제의 기계 앞에 모여든다.

또 한 번의 토론이 시작됐다. 이걸 어떻게 끌 것인가;;

 

정지 버튼을 눌러도 알아듣질 못한다. 막무가내다. 

결국 강제로 코드를 뽑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거품은 심하게 충분히 냈으니 그냥 물에 헹궈서 널려고 하는데

"세제가 아직 남았으니까 깨끗한 물로 헹궈서 탈수시키자."

"난 그냥 짜서 널을게. 이 기계 못 미더워."

"탈수 버튼만 눌러두면 괜찮을거야. 그냥 물빼는 것 뿐이야."

"또 세탁기가 아무 일도 안 하면 어떡해"

"그럼 내가 또 전원 뽑을게."

".......그래;;;......."

그렇게 1시간 여 탈수과정을 거친 빨래;;

내일 안에 다 마르기나 할까 또 다시 걱정이 된다.

양말처럼 주렁주렁 가방에 매달고 가는 일이 없길 바라며...

 

 

# 헤닝과 이유르츠가 cidra를 마시러 같이 가잔다.

둘도 외국인인지라 어설프게 사과주를 따른다.

높은 데서 콸콸 떨어뜨리며 따른 덕분에 찐득찐득해진 컵;;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높이서 떨어뜨리듯 따르는 것은 산화시켜 풍미를 좋게하기 위함이라고.

게다가 큰 컵에 조금만 따라서 빨리 마셔야 한단다.

여태까지 맛본 것보다 시큼한 맛이 더 강한 사과주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테이블마다 cidra병이 두 세 병씩 놓여 있다. 다른 것 마시기도 뻘쭘할 정도다.

빈속에 마셔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아 조금씩 마셨는데 둘이서는 세 병을 비웠다.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저만치 옆에 동양인 아줌마 아저씨가 몇 분 앉으셨다.

"너는 딱 보면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구별할 수 있어?"

헤닝이 묻는다.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뭘 보고? 난 동양인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별을 잘 못하겠어."

"맞아.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베트남인인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

이유르츠도 고개를 갸웃한다.

"당연하지. 나도 너희 볼 때 그래."

둘다 빵터졌다.

 

그리고는 셋 다 서로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얼굴탐험 신비의 세계-

"난 유럽 사람들은 특히 잘 모르겠어. 다 비슷비슷해보여. 나이도 모르겠구."

급 진지해진 헤닝, "근데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어."

 

 

# cidra도 마신데다 정작 바에서는 적당히 먹을 게 없어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이유르츠가 토마토와 쵸리소를 넣어 간단한 파스타를 해주겠단다.

그리곤 셰프처럼 자신있게 파스타팬을 돌리더니 갑자기 멈칫한다.

"헉;;; 마늘을 한 톨 넣었는데 너한테 매우면 어쩌지? 그냥 넣지 말 걸 그랬나?"

"너 말야, 한국음식 먹어봤니?"

"아니"

"우리나라 음식엔 거의 마늘이 들어간단다. 어떤 매운 맛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맛볼 수 있지."

"아하하~ 그렇구나. 다행이다" 

본인이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너무 맛있었다.

정말 셰프같다는 칭찬에 입이 함지박이다.

 

헤닝과 이유르츠 둘 다 칼질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양파를 써는데 칼이 양파를 써는지 양파가 칼을 써는지;; 어떻게 이리 정교하나 싶다.

그래서 독일과 스위스에서 왜 칼을 잘 만드는지 알 것 같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렸다.

나도 거들려고 옆에서 칼 집었다가 조용히 놓고 야채를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