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19. 대비(Llanes-Ribadesella-San Esteban de Leces : 35.23km)

yurinamu 2010. 10. 23. 22:04

 

 

# 알베르게와 붙어있는 Feve역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기차같이 생긴 페브를 타고 바다도 지나고 넓은 들판도 지난다.

배낭여행을 하면 늘 이런 기분일까?

 

걷기만 하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도 않다.

오늘 알베르게는 어떨까, 몇 km 더 가야 마을이 나올까, 저녁은 뭘 먹을까 등등..

지극히 '의,식,주'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런 생각들만 꼬리를 문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만히 창 밖을 내다 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 참 아이러니다.

약 40분 정도 걸려서 히바데세야(Ribadesella)역에 도착했다.

 

 

 

 

# 마을에 내리자마자 축하인사라도 하듯 하늘에서 뻥!뻥! 소리가 난다.

어제 야네스에서도 축제하느라 대포같은 불꽃소리가 밤새 이어지더니 여기도 마찬가지다.

축제도 산티아고 가나보다. 계속 까미노를 졸졸 따라다닌다.

 

'오늘도 대포소리가 밤늦게까지 계속 되겠지?

기념품 가게를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길거리엔 사람들이 북적북적 할거야.'

 

딱 예상대로다. 난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지역을 나타내는 형광 파랑색의 스카프를 두르고 민속의상을 갖춰 입었다.

거리에서 사과주(cidra/cidre)를 홀짝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술병을 하늘 높이 쳐들고 컵에 쏟듯이 따르는게 또 전통인 것 같았다.

손에 다 묻고 흘리는 게 더 많은 이 방법이 왜 전통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cidre와 어떻게 다른지 그 맛이 궁금하긴 했다.

축제거리에서 특산물인 Cardella(견과류 도넛)를 맛보며 장이 선 줄을 따라 구경했다.

여행으로 이런 소도시에 왔을 때 축제를 만나면 참 재미있겠다. 

 

 

 

 

# 해안가 마을이라 경치도 좋고 날씨도 쾌청하다.

게다가 볼거리가 워낙 많고 헤매기도 하고 해서 오늘은 여기 그냥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혹해서 눌러 앉았다간 큰코 다친다.

내일 곱절로 힘든 것보단 낫단 생각에 축제분위기만 살짝 즐기기로 했다.

가지(verdura)피자로 아쉬움을 달래고 발길을 돌렸다.

 

 

 

 

# 6km 정도를 더 가야했다.

그 짧은 구간에 오르막이 무척 가파르다.

내일 히바데세야에서 출발했다간 다음 목적지까지 못 갔을 것 같다.

역시 한 번에 오길 잘했다:)

 

드디어 산 에스테반 데 레체스.

마을 초입에 목장이 나타난다.

근데 정말 아무것도 없고 드넓은 초원에 '댕~댕~'거리는 소방울 소리만 난다.

건물이라곤 저 높이 보이는 성당 하나. 몹시 목가적이다.

'그냥 저기였음 좋겠다' 했는데 화살표 표지판이 있다.

빙고! 오늘의 알베르게다.

 

 

 

 

# 이 길로 올라가는 동안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바도 슈퍼도 없는 그야말로 깡촌이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상황과 너무 대비된다;;

 

알베르게 벨을 눌렀더니 한참 있다 호스피탈레로가 나왔다. 2층 창문으로.

"페레그리나?"

"네;; 네~"

순례자들이 원래 별로 안 오는지, 늦게 오는지 알베르게 안엔 인기척이 없다.

5유로를 거슬러 주시는 아저씨 얼굴에 베겟자국이 쭉 난걸 보니 그동안 주무시고 계셨나보다;;

들어갔더니 아니나다를까 내가 첫 페레그리노다.

호스피탈레로 가족은 윗층에 살고 있어 알베르게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가뜩이나 한적한데 목장에 나 혼자 떨궈진 느낌이다.

 

 

 

 

# 그렇게 조용한 오후를 보내고,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자전거순례자 3인방이 도착했다.

 쫄옷차림에 60kg짜리 짐을 자전거 양쪽에 싣고 달리는 그들은 포르투갈인 가족이다.

 

자전거 순례자들이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내 옆을 슝슝 지날 때 참 부러웠는데

언젠가 한 쫄옷남이 바들바들 떨며 급경사를 오르는 모습을 보곤 그 마음이 싹 가셨다.

그 짐이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고 자전거 무게까지 더하니ㅜ

차라리 나 같은 달팽이 신세가 낫겠다 싶었다.

결정적으로 자전거를 못 타니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