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18. 苦盡甘來 (Colombres-Llanes : 22.29km)

yurinamu 2010. 10. 23. 11:44

 

 

 

# 눈을 떴는데 방에 나만 멀뚱~ 

비비카와 이헨느 모두 새벽에 출발하셨나보다. 잽싸기도 하시지;;;

 

간만에 싱글룸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불도 켜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침낭을 털러 밖으로 가지고 나갔는데 신발이 한 켤레 더 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누구지? 하며 침낭을 탁탁 터는데 뒤통수가 찌릿하다.

뒤를 돌아보니 헤닝이다. 너두 늦장멤버구나;;

 

 

# 오늘은 20km라 목표를 4-5시로 잡고 천천히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차도를 타는 구간이라

씽씽 달리는 차만 제외하면 신경쓸 게 없을 정도로 순탄했다.

차도가 나오다 안 나오다를 반복하다가 6km정도 가서 까미노 루트로 접어들었다.

마을길이 나오고, 구석구석 구불구불 산길을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다.

중간중간 평탄하긴 했지만, 돌길이라 발이 닿을 때마다 뜨거워지는 건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도 처음 1주간 고생했던것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거다.

물집이 생기고 아물고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자리잡기 시작했나보다.

그 땐 내리막길을 못 내려가 뒤로 걷고 지그재그로 걷고 별 짓을 다했는데ㅋ

 

 

# 중간쯤 가서 쉬려고 앉았다.

밴드를 다시 붙이는데 얼마 안 있어 헤닝이 온다.

이 근처에 멋진 해변(playa)가 있다며 해안길로 가고 싶은데 루트를 아냐고 물어본다. 

가장 정확하다는 독일인표 노란책을 갖고 나한테 길을 묻다니 훗-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건 이것 뿐야~"

갖고 있던 종이조각을 내밀었다.

[오늘의 목적지, 알베르게 주소 및 연락처] 달랑~

한국어로 쓰여있지만 몹시 요약이 잘 된 정보를 본 헤닝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에서 커피 한잔 하고 간다기에 나는 먼저 일어났다.

배낭을 매면서 무게중심이 쏠리는 순간 발이 찌릿하다 윽-

걸으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 - 오래 쉴수록 발에 피가 통해서 더 아프다ㅜ

 

30분 정도 걸어가니 까미노 표지판과 함께 Playa표지판이 나온다.

헤닝이 말한 것이 이쪽인가 싶어 발길을 돌렸다.

매일 길을 잃으니 갈수록 무모해지는 것 같다. 가고 싶으면 내키는대로~  

조금 지나니 푸른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 화살표가 나와 다시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너무 험하고 가팔라져서 이게 맞는 길인가 싶다.

산길이 나오더니 중간에 쉴 곳 하나없고 무덤 같은 곳만 나온다.

간혹 하이킹이나 조깅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저 대단하게 보일 뿐.

가방은 던져버리고 싶고 벌레가 기어오르든 말든 돌바닥에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발을 질질 끌며 걷는데 마을길에 들어서자 작은 바가 하나 보인다.

스프라이트로 목을 축이며 신발을 벗었다. 

먼저 온 순례자들이 찬물에 담그면 훨씬 낫다며 알려준다.

바 한 켠에 순례자들을 위한 수돗가가 마련되어 있다.

얼얼한 찬물에 담그고 좀 앉아 있으려니 따가운 햇볕에 발이 금방 마른다.

열기를 식히고 나니 정말 통증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바 주인은 남은 길이 4km라고 알려주며 세요도 찍어준다.

 

 

 

 

 

 

# 신발끈을 동여매고 다시 출발!

근데 어찌 1시간여 남은 길 치고 오르막만 계속 나온다.

이제 좀 내려가나 싶으면 한 없이 올라가고ㅠ

경사가 60~70도 정도 되어 보이는 곳에선 어이없어 털썩 주저앉았다.

눈 앞에 웬 산 하나가@.@ㅋㅋ

 

마을이 발 아래 보이는데 계속 올라가기만 하니 눈물날 것 같았다.

내가 착시현상을 겪는 건가. 제주도 도깨비도로가 여기도 있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차라리 그냥 옆 낭떠러지로 굴러 내려가고 싶었다ㅠ

'침낭에 들어가 구르면 좀 괜찮지 않을까' 하며 꾸역꾸역 올랐다.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를 때쯤 내리막길이 나왔다.

발에선 불이 났지만 쭉쭉 내려와 마을 중심가로 갔다.

 

 

# 큰 도시라 상점은 많은 것 같다.

인포센터를 찾으러 가는데 테라스 카페에 앉아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손을 막 흔들어댄다.

누구....?

자세히보니 비비카다.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있으니 누가 외국인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 먼발치에서 나를 알아보곤 반갑게 맞더니 남은 커피를 들이키곤 같이 가잔다.

벌써 일찌감치 도착해 점심도 먹었단다. 역시 부지런하다~

 

비비카의 도움으로 Feve역에 붙어있는 유스호스텔을 찾아 들어갔다.

시설은 그럭저럭이지만 방에 들어서니 탄성이 나온다.

특히 새파란 지중해풍 페인트 색이 맘에 든다.

창가 옆에 놓인 2층 침대에 누워 천정을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내가 집 짓고 살면 꼭 이런 색으로 칠해야지:)' 

 

아예 배 깔고 일기 쓰는데, 막 도착한 헤닝이 두건도 풀지 않은 채 방에 들어와 인사를 한다.

다행히 해변길은 잘 찾아서 왔단다.

여행을 많이 다녀셔 그런가 참 여유있는 친구다.

 

 

# 일기를 쓰고 세탁물을 가지러 내려갔다.

여긴 세탁기는 없고 AEG탈수기만 있다.

빨래는 셀프고 건조만 첨단이라니.. 특이한 시스템이다.

휴지통처럼 생긴 탈수기에 빨래를 넣으니 야채탈수기처럼 쭉쭉 물이 나온다.

건조기에 1시간정도 넣으니 완전 정전기가 따닥따닥 날 정도로 말랐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가져보는 뽀송한 빨래인가ㅋㅋ 

 

방으로 올라가는데

신디가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감격 상봉~!

언젠가 다시 만날 줄 알았다.

한참 수다떨다가 내 뽀송한 빨래를 보곤 자기도 얼른 해야겠단다ㅋ

 

오늘 여기서 다들 만난 듯-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든든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