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16. 재회(Santillana del Mar-San Vincente de la Barquera :34.13km)

yurinamu 2010. 10. 22. 11:48

 

 

  

# 알베르게 자리가 적어서인지 어제 좀 늦게 도착한 청소년들은 야외에서 침낭을 펴고 잤다.

아침에 빨래 걷으러 나가보니 맨땅에 누에고치 4마리가;;;

간밤에 무척 춥던데 잠잔 것 같지도 않겠다ㅜ 

 

사실은 나도 잠을 좀 설치긴 했다.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하시던 스페인 아주머니들이

아침 5시 반부터 전체조명을 켜고 짐을 싸는 바람에 잠이 다 깼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가는 걸 보며 잠에서 깬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세계 어딜 가나 경우 없는 사람들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어제 고민하던 그 알타미라 미술관을 오늘 가보기로 급 결심했다.

사실 여기서 2km나 떨어진데다 까미노를 완전히 벗어나 걸어가야 한다.

산티아나델마르로 돌아와야 하는 나는 4km를 더 걷는 셈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보기도 쉽지 않은데 지척에 있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일찌감치 길을 나서려는데 신디가 자기도 거길 간다며 동행하자고 한다.

어쩐지 영어를 잘한다 했더니 애리조나에서 왔단다ㅋ

미주와 유럽을 많이 여행해 본, 아주 씩씩한 친구다.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다니는데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단다.

"알타미라, 이거 무슨 뜻인지 알아?"

알타미라의 의미를 신디에게서 처음 들었다. 

 

9시 반부터 입장인데 32분에 도착했다.

둘다 첫 입장객이 되어 표를 끊고 들어갔다.

당시 생활상과 유물, 영상 등을 잘 전시해놓았고 벽화 보존도 잘 되어 있었다.

인원제한이 있었던 벽화동굴은 원형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 놓아 더 실감났다.

 

 

 

 

# 나는 다시 산티아나 중심가로 내려와 산 빈센트행 버스편을 알아보고 신디는 꼬미야스(Comillas)로 갔다.

인사를 하면서도 며칠 뒤 또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디도 그랬는지 또 보자며 밝게 인사한 뒤 씩씩하게 길을 간다.

 

산 빈센트 드 라 바르퀘라(San Vincente de la Barquera)에 도착했는데 여기도 완전 중세도시다.

알베르게도 돌로 지어진 건물 안에 있어 흐린 날씨와 제법 잘 어울린다.

좀 늦게 들어가긴 했지만 운이 좋게도 침대가 2개만 놓인 방에 자리를 잡았다.

도미토리 안에 있긴 하지만 오늘 밤은 코고는 소리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하다.

 

 

 

 

    #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유난히 활발하고 말이 많았던 독일인 아저씨와 조용한 아줌마다.

구에메스에서 만났을 때 몹시 반가워했는데 또 만났다.

아줌마는 항상 조곤조곤~ 나긋나긋 말씀하시는데

반면 아저씨는 수다 때문에 스페인사람으로 종종 오해받곤 한다.

한국문화와 IT산업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다. 

한국인은 터치스크린이 몸에 배어있는 민족이란다.

결제할 때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종이에 안 하고 꼭 화면에 한다나ㅋㅋ 

신혼여행을 이곳으로 왔다는 이들 부부는 독일로 돌아갈 날이 머지 않아 며칠 후 산티아고로 바로 간다고 했다.

 

성벽같이 지어진 성당을 함께 둘러보고 알베르게에 돌아와 쉬려는데 누가 방 앞에 멈칫한다.

헤닝이다. 어제 버스정류장에서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엄청 빨리 걸어온 것 같다.

어떻게 왔냐며 잘 지냈냐며 묻는데 몹시 진지하다.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간 간간이 마주쳤던 독일커플이 인사를 건네며 들어온다.

이 아이들도 나이에 안 맞게 진지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봐서인지 무척 반가워한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독일인이 많은거니;;

스페인이 아니라 독일에 온 것 같다..

 

 

 

 

# 다들 모여 알베르게에서 대접해주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도 분위기가 참 가족적이다.

실제로 2대에 걸쳐 한 가족이 머물며 알베르게를 관리하고 있어서기도 하다.

 

식사 중엔 길에 대한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왔다.

한국에서 올 때 막연하게 프리미티보길을 가야되겠거니 생각을 하고 왔는데 막상 가려니 고민이 된다.

프리미티보(Primitivo)는 지형이 험한데다

식량을 이틀치씩 지니고 다녀야 할 정도로 고되긴 하지만 본래 순례길이니 의미가 있을테고,

해안길(Coast Way)은 아름다운 해안가 경치를 보며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단 점이 끌리지만 자료가 전혀 없다.

경로를 자세히 보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