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14. 여행자와 순례자 사이(Guemes-Santander : 11.56km)

yurinamu 2010. 10. 21. 17:54

 

 

 

# 아침에 짐을 꾸리는데 괜히 아쉽다.

오늘 일정이 여유롭게도 하고 알베르게에 정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다같이 늦게 출발하는 분위기다.

김수미 목소리의 프랑스인 아줌마와 까트린은 인사를 하고 먼저 떠났다.

느긋하게 침낭을 개고 배낭을 꾸리는데 옆방의 다솜이와 마주쳤다.

같이 길을 나서다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를 꺼냈다.

호스피탈레로, 파스칼, 그리고 같이 묵었던 크리스티나, 마틴과 차례로 사진 팡팡!

내년엔 이 사진들도 고이 묶여 알베르게 도서관에 보관되려나;;

긴 긴 인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니 9시다.

 

 

# 평탄한 아스팔트길이 대부분이라 해서 무리하지 않고 걷기로 했다.

해안길을 따라 Somo까지만 가서 배를 타면 된다니 부담이 없었다.

다솜이와 한숨도 쉬지 않고 쭉 걸었는데 어느덧 소모 근처까지 왔다.

바닷가라더니 물은 커녕 모래 한 알도 못 봤는데;;

수다떠느라 정신이 없어서 우리도 모르게 지름길로 왔나보다.

둘다, 이대로 가긴 너무 허무하다! 해서 

바다라도 좀 보기 위해 굳이 모래사장을 밟고 바닷가로 갔다.

 

신발을 벗고 당장 물에 첨벙첨벙 뛰어들고 싶은데 

물집투성이인 발에 바닷물이 닿으면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배낭만 내려놓고 일광욕하는 모양새로 한동안 모래사장에 앉아있었다.

 

파도치는 바다를 따라 걸으며 해안 끝까지 왔는데 그만 소모도 지나쳐 버렸다.

심지어 지나친 줄도 몰랐는데 친절한 스페인 아저씨가 우리를 보곤 불러세운다.

"너희 여기로 가면 안 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긴.. 어디에요?"

어디가서 이런 우매한 질문을 하게 될 줄 몰랐건만..

어쨌든 아저씨의 길 안내와 아들의 통역이 환상콤비를 이룬 부자(父子)의 완벽한 도움 덕에

무사히 선착장을 찾아갈 수 있었다.

 

모래사장을 넘고넘어 산탄데르행 배를 탔다.

그 와중에 바닷가에 영국을 오가는 거대한 페리가 나타나 잠시 헛된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우리가 타야할 것은 산토냐 올 때 만큼 작은 배였다.

10분쯤 지나자 큰 도시가 나왔다.

 

 

# 산탄데르에 내렸는데 아... 여기도 축제다;;

중심가에서만 기념품과 음식 등을 팔고 또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점심 때가 다 되도록 물 한모금 먹지 않은 우린 시장을 둘러보다 뽈뽀(문어요리)와 립을 주문했다.

그 유명한 뽈뽀를 이렇게 맛보다니+.+

문어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페퍼와 올리브오일을 곁들이니 썩 괜찮다. 

지나온 마을도 그렇지만 여기가 모두 해안가 지방이라 그런지

빠에야를 비롯한 해산물 음식이 유명하고 또 맛있다.

해안길을 좋아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 에너지를 충전한 우린 알베르게에 들러 가방을 던져두고 다시 나왔다.

어느 나라든 관광객으로 가면 시장을 꼭 찾게 되는데

거긴 그 지역만의 사람 사는 모습이 그대로 있어서 좋다.

 

상인들은 저마다 내놓은 물건과 어울리는 전통 복장을 갖췄다.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장신구와 수제 비누, 초콜릿, 빵 외에도 처음 보는 특이한 전통 소품이 정말 많았다. 

여행객이라면 예쁜 소품들을 맘껏 골라봤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냥 눈으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파스타  한 봉지도 무거워 하는 내게 까미노 위에서 금속 장식품들은 곧 짐이었다.

명함의 절반 크기인 영어-스페인어 미니사전이 꽤 요긴해보여 얘 하나만 사고

나머진 사진으로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어째 갈수록 실용적인 것만 찾게 되는 듯 하다.   

 

 

  

 

# 이것저것 구경하다 천막을 고정하는 큰 집게를 발견했다.

길이만 족히 30cm는 되어 보이는 것이 하나만으로 천막 몇 장을 거뜬히 고정하고 있었다.

 

"와.. 저걸로 침낭 말리는데 집으면 딱 좋겠다." 

다솜 曰, "언니~ 완전 순례자같은 생각이에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자연스러워진 순례자 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