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9. Aimer les Différences(Pobena-Castro Urdiales : 13.87km)

yurinamu 2010. 10. 20. 11:20

 

 

 

# 모기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다.

귀에서 앵앵 거리는데 불을 켤 수도, 뿌릴 약도 없어 고역이었다.

침낭 안에 누에고치처럼 들어가 귀를 막고 있자니 땀이 뻘뻘 흐르고 숨이 막혔다.

모기와의 사투를 벌이느라 가장 길게 잠든 시간이 30분이다.

매 시간 깨어나면서 빨리 나갈 수 있기만을 기다렸다.

 

 

# 제일 먼저 일어났다.  

간밤에 저번처럼 눈팅이를 물을까 지레 겁먹었던터라 일어나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다행이다. 잘 떠진다. 

수면부족에 쾡해진 눈으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출발~!

원래 24km 여정이지만 16km정도 되는 길을 알았다.

지난 알베르게에서 호스피탈레로가 말해준 유용한 정보다.

그리고 나머지 북쪽길 자료도 조금 얻었다.

하루하루 갈 길이 몇 km정도 인지만 알고가야 하는 내겐 단비같은 소중한 자료다.

 

마을을 벗어나니 해안길을 따라 평탄한 아스팔트가 펼쳐졌다.

바다 색깔이 하늘 색과 맞닿아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가파른 절벽 아래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네이비 블루 색의 파도가 친다.

그 길을 따라 조깅도 하고 자전거도 타는 이 곳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운 순간이다:)

 

 

 

 

 

# 한참을 해안길로 걸어가다 갈림길로 짐작되는 온톤(Onton)시가 나왔다.

까미노 표시와 화살표, 표지판 모두가 왼쪽을 가리키는데

목적지인 까스트로 우르디알레스까지 아직 16km나 남았단다.

그럼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하나 고민하는데

마침 앞서가는 스마일맨 스페인 아저씨가 보인다.

붕대 감은 다리를 절뚝절뚝 절면서도 나보다 빠르다.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독일인 아저씨와 동행했었는데 헤어졌나보다.

 

사람이 드문 이 길을 걷다보니 만나고 헤어지는 게 점점 익숙해진다. 

안녕~ 하고 헤어지고는 알베르게에서 또 만나고,

같이 걷다가 헤어지고, 길에서 또 만나고 하는 식이다.

올해는 중간까지만 걷고 내년에 다시 올 거라는 사람도 있고, 

일정을 맞추기 위해 몇 km를 건너뛰는 사람도 있다. 

다리가 너무 아파 포기한 사람도 있다.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서도, 걷는 속도에 따라서도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때문에 길에서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고 또 함께 걷는다는 건 그만큼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다. 

스페인 아저씨는 오른쪽으로 나 있는 N-634도로로 접어든다. 

호스피탈레로가 말한 그 길인것 같아 차로를 선택했다.

 

 

# 차만 씽싱 달리는 곳에서 또 길을 잃었다.

아무런 표지판도, 화살표도 없다.

모험을 결정한게 잠시 후회됐다.

아까 보였던 shell주유소로 되돌아가 직원에게 물어볼까,

지나가는 아무 차나 세워 물어볼까 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순례자가 나타났다. 

나무 지팡이를 땅땅 짚으며 이쪽으로 오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과 남루한 차림의 그 옆에는 비쩍 마른 검은 개가 있다.

"올라!"

길을 알고 있을(거라 믿는) 구세주에게 얼른 인사했다.

그런데 개가 인사를 대신 받았나보다.

두발로 딛고 일어서니 어깨까지 오는 우람한 녀석이 

내 배낭에 마구 부비며 귀여운 척이다.

'이거 왜, 왜이래;;;'

구세주가 얼른 개를 떼어내더니 뭐라뭐라 야단을 친다.

금세 주눅들은 개의 표정을 보니 급 불쌍하다.

'이 누나야는 개를 다 예뻐하는데 넌...좀...무서웠어ㅠㅠㅠ'

 

"Castro?" 

물을 한 사흘쯤 안 마신 듯한 목소리로 구세주가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스틱으로 오른쪽을 가리킨다.

왼쪽은 고속도로라 사람이 다니지 못하는 길이란다.

다행이다. 아까도 화살표를 못 찾고 우왕좌왕 하는데 

현지인 순례자가 어디선가 뿅~ 나타나 알려주고 사라졌다.  

나도 이렇게 다른 순례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 찾는 것만 빼고ㅜ

 

전형적인 스페인인처럼 보이는 이 순례자는 일본인이냐 묻는다.

여기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한국이라 하면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꼭 되묻고, 그럼 한국에 사느냐고 묻는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살지 그럼;;'

처음엔 의아했는데 유럽 곳곳에서 사는 친구들을 만나며 이 질문을 비로소 이해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반드시 그럴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닐 수도 있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다.

 

 

 

 

# 차도를 따라 가니 해안가 마을이 짠! 하고 나타났다.

하지만 알베르게에 가려면 마을 초입에서부터 끝을 가로질러야 했다.

해안을 따라 쭉 걸어가는데 4km정도 된다. 이래서 큰 마을이 요즘엔 싫다ㅋ

 

쓰러질 것 같아 마을 중간 쯤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4시반에 인포센터가 열리길 기다렸다.

장도 보고 지도도 받고 알베르게 정보도 얻었다.

까미노에서 인포센터는 참 소중한 존재다ㅋ

 

우여곡절 끝에 알베르게 도착.

중간에 만난 독일 커플은 이미 도착해 수영 갈 준비까지 마쳤다. 역시 부지런하다.

스위스에서 온 마리아는 나를 보자마자 "Kim?" 하고 묻는다.

한국에 김 씨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며 내게도 찔러본 것이다.

안타깝지만 땡~! 성과 이름을 알려주니 몹시 신기해한다.

한국은 김씨 나라인줄 알았나보다.

 

며칠전에 한국 여자아이를 만났다고 했다.

컨디션 때문에 천천히 온다고 했으니 언젠가 만날 것 같았다.

유쾌한 성격 덕분인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마리아, 그녀는 까미노길을 따라 걷지 않는단다.

알베르게나 바를 거쳐가기 위해 오늘처럼 4km씩이나 생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해안에 인접한 길을 따라 걸으면 훨씬 경치도 좋고 거리도 짧으니 화살표에 연연할 필요가 없단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까미노다' 라고 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종종 만난다.

체력과 방향감각이 뒷받침 되어야 도전해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길을 잃었을 때 이렇게 생각하면 한결 맘이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