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6. 불편한 도시(Gernika-Bilbao : 31.54km)

yurinamu 2010. 10. 16. 22:58

 

 

# 드디어 빌바오 가는 날이다.

거리가 32km에 달하지만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아침에 조금 여유를 부렸더니 호스텔에서 제공되는 빵과 커피가 다 떨어졌다.

아직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비스코티 몇 조각과 주스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기 전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계단을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보는데 슈나우저 한 마리를 산책시키던 할아버지가 말을 거신다.

내가 길을 잃은 줄 아셨나보다.

"까미노? 까미노 데 산티아고?"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까미노를 찾아주신다며 저만치 앞서가신다. 

몇 번이고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래도 귀가 어두우신 것 같다.

포기하고 그냥 따라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슈나우저와 할아버지, 그리고 나는 마을 한 바퀴를 산책했다. 

까미노 길목에서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드린 후 정류장을 찾아 내려왔다;;;

 

 

 

 

# 한참을 달려 빌바오 터미널(Termibus)에 도착. 목적지가 종점이라 다행이다.

갑자기 도로가 넓어지고 사람도 많아졌다.

건물도 높고 차도 많아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워낙 큰 도시라 알베르게를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ㅜ 

빙빙 돌다 겨우 주소지를 보고 찾아간 알베르게는 굳게 잠겨있다.

4시까지 기다리자니 주변은 씽씽 달리는 차들 뿐이고 너무 막막했다.

하는 수 없이 인포센터를 찾기로 했는데 그것도 어딘지 모르겠다.

지나는 사람들도 모르겠단다.

경찰서를 가보라는데 경찰서도 어디있는지 다들 모른단다-.-;;

 

힘없이 벤치에 앉아있는데 Eurosken이란 연두색 트램이 지나간다.

시내를 순환하는 것 같았다.

정류장노선을 보니 구겐하임이 있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엔 인포센터도 있을거야'  

무작정 올라탔다.

 

 

# 갑자기 관광지에 온 느낌이라 바짝 긴장이 됐다.

창 밖으로 보이는 빌바오는 흐리고 정신없고 어수선하다.

구겐하임에 내리자마자 인포센터 표시를 찾았다. 

가까이 보이는 표지와 다르게 미술관이 워낙 커서 한 바퀴 빙~ 돌은 후에야 겨우 다다랐다.

이건 뭐 까미노보다 더 고생스럽다.

 

관광객 천지인 인포센터에서 줄을 서 가까스로 물을 수 있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알베르게 위치다.

이 곳과 정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빌바오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 

듣는 순간 힘이 쭉 빠졌다.

 

북쪽길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 도무지 갈 힘이 나지 않는다.

빌바오는 페레그리노에 그리 친절하지 않은 도시다.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털레털레 유로스켄을 타고 Abando역으로 이동했다.

알베르게로 가는 Bilbobus 58번으로 갈아타고

역시 오지랖 넓은 주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차. 

앞에 떡 하니 서있는 건물은 호텔 크기의 유스호스텔이다.

일단 알베르게라고는 써 있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는데 가리비를 단 배낭들이 많다.

빌바오에 공항이 있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순례자들도 꽤 많다고 들었던 게 문득 생각난다. 

호스텔인만큼 시설은 깨끗하고 좋다.

다만 카드키를 대며 방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 내일 하루가 더 있으니 미술관 관람은 내일로 미루고 분위기를 볼 겸 다시 시내로 나왔다.

상점이 많이 닫은 것 같아 인포센터에 이유를 물으니 축제(Fiesta)란다;;

참 이 나라는 축제도 많다.

시에스타 피에스타 시에스타 피에스타 언제 일하니-.-;;;

 

곳곳에서 퍼포먼스가 열리고

빌바오 상징인 파란 스카프를 두른 악단도 심심찮게 지나간다.

길가엔 꽃가루로 가득하다.

 

오후 6시쯤 되자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더니

광장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경찰까지 동원되었다.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려니 현기증이 났다.

인파를 헤치고 얼른 그 곳을 빠져나왔다.

 

 

 

 

# 어느덧 깡촌에 적응했나보다.

이런 북적거림이 어색하기만 하다.

성당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저녁을 먹으러 보까따(Bocatta)에 들어갔다.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아 패스트푸드점은 한번도 가지 않았지만

이 곳에선 괜찮은 보까디요(Bocadillo)를 맛볼수 있을 것 같았다.

 

올리브가 든 신선한 샐러드와 치즈가 풍성하게 든 따뜻한 보까디요가 

앞으로 자주자주 생각날 것 같은 맛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자튀김보다 生샐러드를,

케첩&마요네즈가 아닌 올리브오일&발사믹식초를 선택할 수 있음 좋을텐데..

갈수록 바람이 소박해진다.

 

 

 

 

# 축제장을 바라보며 멍 하니 있다가 시계를 봤다.

앗, 벌써 9시다;;;;

숙소가 먼 것을 그만 깜박하고 있었다ㅠ

20분 간격이라던 버스도 한참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는다.

축제라 정류장이 임시로 바뀌었단다;;; 이넘의 축제;;

 

경찰들과 아줌마 세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58번 빌보 버스 탑승,

깜깜한 밤이 되서야 알베르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버스 뒷좌석에 앉아서 보니 맨 앞좌석에 한 순례객이 아까 나처럼 지도를 들고 초긴장 상태에 있다.

노란책으로 봐선 독일인인데ㅋ

알베르게에 다다라 같이 내렸다. 

내 차림을 보곤 반갑다며 말을 건다.

알고보니 역시 독일인이다ㅋ

내게 여기서 며칠 묵었느냐고 묻는다.

하루종일 치이고 치여 이 곳에 달관한 표정이었나보다.  

내일은 좀 정신 차리고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