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5. Why? How! (Zenarruza-Gernika : 18.08km)

yurinamu 2010. 10. 16. 21:14

 

 

 

# 아침에 또 쥐가 나서 깼다.

간만에 코고는 사람 하나 없어 곤히 잤는데 다리가 말썽이다.

어제보다는 낫지만 오늘 무리하면 또 뻗을테니 쉬엄쉬엄 가기로 한다.

이제 빌바오도 머지 않았다:)

 

알베르게로 올라오신 신부님과 다른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오늘의 목적지 게르니카로 향했다.

 

 

 

 

# 역시 숲 속, 초원, 자갈길, 진흙길, 계곡 등을 마구마구 나온다.

구비구비 길을 지나 작은 마을에서 중간중간 쉬었다.

그동안 해 본적 없던 양말벗어 발말리기도 해가며 쉬어갔는데

어깨를 짓누르는 10kg의 짐은 어찌 견뎌낼 수가 없다.

옆을 휙휙 지나가는 자전거 순례자들이 순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쫄옷(?)차림의 그들은 항상 바람을 가르며 유쾌한 표정으로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지나간다. 

 

 

 

 

# 중간에 자전거도로와 까미노가 갈라지는 지점에 섰다.

잠깐 쉬어가려고 배낭을 내리는데 어깨가 찌릿하다. 

여러 개의 실핀으로 막 찌르는 느낌+근육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느낌ㅠ 

윽 소리가 절로 난다.

게다가 옷은 물론이고 배낭 등판까지 땀으로 다 젖었다.

햇빛이 닿는 쪽으로 배낭과 등을 돌리고 돌담에 앉았다.

겨우 한숨 돌리는데 까트린이 인사하며 지나간다.

어쩜 저렇게 가뿐한 표정인지;;

 

나는 자전거도로를 타고 쭉 내려왔다.

중간에 화살표가 나타나는 걸 보니 이 길도 맞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짐작으로, 느낌으로 길을 가는 버릇이 생겼다.

왠지 굳이 화살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왜냐? 까미노니까.

 

 

# 중간에 까미노 표지판이 나타났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정말 엄한 곳이다.

얼추 60도 이상은 되어보이는 급경사;;

엄두를 못 내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쫄옷 순례자가 자전거를 세운다.

"어휴~ 여긴 너무 험해,"

"이 도로 따라서 5km정도만 가면 게르니카 도착할 수 있을거야.

노란색 화살표는 없지만 길따라 똑바로 가면 돼, 알았지?"

 

쫄옷 아저씨를 믿고 그 길을 따라갔다.

말 그대로 정말 평탄하고 쉴 곳 하나 없는 차도였지만

오르락내리락 산길에 비하면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

힘들면 아무리 좋은 경치도 사치다.

 

2시간 반 정도를 더 걸었다. 

산 아래 큰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도 '부엔 까미노(Buen Camino)'를 외쳐주고 알베르게를 앞장서서 알려준다.

 

 

 

 

 

# 유스호스텔이라 비싸긴 하지만 알베르게에만 있다 오니 확실히 쾌적하다.  

좀 쉬다가 마을을 둘러보러 나갔다.

까르푸처럼 큰 Eroski Center에서 전자렌지용 라자냐와 과일을 샀다.

 

점심을 거른터라 과일로 식사 겸 디저트를 먹고;;;; 

빨래를 하러 내려가는데 스페인 친구들과 딱 마주쳤다.

다들 우오~~!!하며 괴성을 지르며 놀라워했다.

마틴은 눈이 튀어나오겠다.

"Why~?"그러자 "How~!!"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쥔다.

"어떻게 왔어?"

"너무 잘 걷는 거 아냐?"

"완전 남잔데?"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겨우 분위기가 진정됐다.

미구엘은 쪼르르 쫓아와서는 지나온 길에 대해 더듬더듬 묻는다.

단어가 생각 안 나는지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다가 스페인어로 묻는다.

그대로 따라하자 재밌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는다.

언어장벽놀이를 한참 한 후에야 빨래를 세탁기 안에 넣을 수 있었다.

 

 

# 알베르게를 나와 인포센터로 가는 길,

항상 웃는 스페인 아저씨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독일인 아저씨, 주황색 티셔츠를 좋아하는 프랑스 소년 한 명 등

낯익은 얼굴들이 속속 도착하며 나를 보곤 엄지를 치켜든다.

이어 세나루사에 묵었던 까트린과 일본계 오스트리아인 친구(이름이 뭐였는지;;)도 다 만났다.

이 친구는 병원을 다녀왔다며 붕대감은 발목을 보여준다.

이대로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내일도 여기에 묵는단다.

까트린과 내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자 과연 까미노를 다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발목붕대를 감은 친구들을 여럿 본 터라 나도 조바심이 난다.

벌써 약해지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