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7. 빌바오에서의 하루(Bilbao)

yurinamu 2010. 10. 18. 12:59

 

 

 

# 구겐하임 미술관.

사진을 찍기엔 썩 괜찮은 인공조형물이 많다.

날씨만 따라준다면 누가, 어느 각도로 찍어도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올 듯.

 

빛을 받아 번쩍이는 거미가 서 있었다.

구릿빛 조형물을 본 순간 멋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작년 하노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날 밤,

저걸 꼭 닮은 왕거미가 갑자기 방에 나타났다. 

숯가루를 뒹굴다 온 듯한 시커먼 몸통과 다리엔 검은털이 북슬북슬 나 있는 게,

꼭 사진에서 봤던 타란툴라같았다.

사후처리가 더 끔찍할 것 같아 잡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그 때 손바닥만한 괴물이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자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옆에 세워져 있던 빨래널기용 장대를 잡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장대 끝으로 몸통을 조준, 

열린 창문 밖으로 부웅~ 날렸다.

2번만에 나이스샷~!

첫 퍼팅(?)에 실패했을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쨌든 엉터리 골프실력으로 목숨을 구한 순간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손에 땀이 난다.

여기 서 있는 네 녀석을 보니 또 그렇다.

 

아침이라 꽃강아지가 한결 산뜻하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앞으로 다가가니 이런 굴욕이 없다. 

몸 천제에 심어둔 꽃이 잘 자라라고 물을 주는 모양인데

모습이 강아지다보니;;; 턱에서 물이 뚝뚝뚝 계속 떨어진다.

침을 질질 흘리는 꽃강아지, 좀 없어보인다ㅋ

 

 

 

 

# 두루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졌다.

다시 연두색 트램과 빨강색 58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공항리무진같은 시외버스와는 달리 일반 시내버스는 중앙 부분이 거의 비어있다.

좌석이 거의 없고 바(손잡이)만 있는데 그 공간은 장애우와 유모차를 위한 곳이다.

 

오늘은 이 공간이 꽉 찼다.

휠체어 한대와 유모차 3대가 창쪽으로 나란히 주차했다.

유모차에 탄 아가들 3명은 창 밖을 보며 즉석만남을 즐기고 있고

부모님들은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아기들에게 간식을 나눠준다.

 

버스 안이 붐비고 전용차 4대가 움직여도

누구 하나 찡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들 싱글벙글이다.

내릴 때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돕는다.

기사님도 빨리 내리라고 재촉하거나 문을 닫아버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버스 타고 내릴 때 항상 조마조마한 내겐

이런 것조차 특별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버스를 타면 꼭 다 내리기도 전에 스위치를 올려

삐~ 소리와 함께 금방이라도 뛰어내려야 할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제때 못 통과하면 그냥 갇혀버리고 마는 서바이벌 게임같다ㅋ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문득, 알베르게에도 장애우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던 것이 생각났다.

확실히 선진국의 면모는 이런 사소한 곳에서 드러난다.

 

 

 

 

 

# 당분간 대도시의 이런 혼잡스러움이나 편리함을 못 느낄 것 같았다.

따지고 보자면 뭐 그리 편리하지도 않았지만;;ㅋ

관광객들은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는 그런 곳인데,

다시 오기에는 어려운 곳인데,

아쉬움도 많고 밉기도 하고 그렇다.

너무 많이 고생했던 도시로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