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겐하임 미술관.
사진을 찍기엔 썩 괜찮은 인공조형물이 많다.
날씨만 따라준다면 누가, 어느 각도로 찍어도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올 듯.
빛을 받아 번쩍이는 거미가 서 있었다.
구릿빛 조형물을 본 순간 멋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작년 하노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날 밤,
저걸 꼭 닮은 왕거미가 갑자기 방에 나타났다.
숯가루를 뒹굴다 온 듯한 시커먼 몸통과 다리엔 검은털이 북슬북슬 나 있는 게,
꼭 사진에서 봤던 타란툴라같았다.
사후처리가 더 끔찍할 것 같아 잡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그 때 손바닥만한 괴물이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자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옆에 세워져 있던 빨래널기용 장대를 잡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장대 끝으로 몸통을 조준,
열린 창문 밖으로 부웅~ 날렸다.
2번만에 나이스샷~!
첫 퍼팅(?)에 실패했을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어쨌든 엉터리 골프실력으로 목숨을 구한 순간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손에 땀이 난다.
여기 서 있는 네 녀석을 보니 또 그렇다.
아침이라 꽃강아지가 한결 산뜻하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앞으로 다가가니 이런 굴욕이 없다.
몸 천제에 심어둔 꽃이 잘 자라라고 물을 주는 모양인데
모습이 강아지다보니;;; 턱에서 물이 뚝뚝뚝 계속 떨어진다.
침을 질질 흘리는 꽃강아지, 좀 없어보인다ㅋ
# 두루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졌다.
다시 연두색 트램과 빨강색 58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공항리무진같은 시외버스와는 달리 일반 시내버스는 중앙 부분이 거의 비어있다.
좌석이 거의 없고 바(손잡이)만 있는데 그 공간은 장애우와 유모차를 위한 곳이다.
오늘은 이 공간이 꽉 찼다.
휠체어 한대와 유모차 3대가 창쪽으로 나란히 주차했다.
유모차에 탄 아가들 3명은 창 밖을 보며 즉석만남을 즐기고 있고
부모님들은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아기들에게 간식을 나눠준다.
버스 안이 붐비고 전용차 4대가 움직여도
누구 하나 찡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들 싱글벙글이다.
내릴 때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돕는다.
기사님도 빨리 내리라고 재촉하거나 문을 닫아버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버스 타고 내릴 때 항상 조마조마한 내겐
이런 것조차 특별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버스를 타면 꼭 다 내리기도 전에 스위치를 올려
삐~ 소리와 함께 금방이라도 뛰어내려야 할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제때 못 통과하면 그냥 갇혀버리고 마는 서바이벌 게임같다ㅋ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문득, 알베르게에도 장애우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던 것이 생각났다.
확실히 선진국의 면모는 이런 사소한 곳에서 드러난다.
# 당분간 대도시의 이런 혼잡스러움이나 편리함을 못 느낄 것 같았다.
따지고 보자면 뭐 그리 편리하지도 않았지만;;ㅋ
관광객들은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는 그런 곳인데,
다시 오기에는 어려운 곳인데,
아쉬움도 많고 밉기도 하고 그렇다.
너무 많이 고생했던 도시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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