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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그리고 사물. 세계. 사람], 조경란

yurinamu 2011. 7. 5. 18:16

 

 

백화점에 가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물론 붐비는 시간을 제외하고-

여느 건물에 들어가도 잠시나마 바깥공기를 쐬지 않으면 현기증을 느끼는 내가

창문 하나, 시계 하나 없는 꽉 막히고 거대한 공간 안에 기꺼이 들어가는 이유가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표정이 있다면 무척이나 새초롬할 것 같은 값비싼 물건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나(고객)의 동선과 눈빛을 주시하는 점원들.

예술작품이라 착각할 만큼 우러러 보게 되는 디스플레이, 마네팅들.

무언가 많이 쌓여 있고 늘어서 있는 모습이지만

전혀 혼란스럽거나 거북하지 않다.

 

어쩌면, 오히려 그 안에서 나를 찾는 것 같다.

단순히 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내 손에 넣는 행위 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느끼고 그로 인해 '나'를 느끼는 것.

... 여기서 갑자기 중년 아저씨들의 중얼거림을 분석한 김정운 교수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나름의 완고한 세계를 구축한 중년 남성들은 자신에게 기꺼이 관심을 갖거나 말을 걸어오는 대상이 없으니

자문, 자답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려 한다는 슬픈 분석을 들은 바 있다.

 

아무튼.

구매행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아가 자존감을 드높이기 위한 방식인 셈이다.

작가가 백화점을 찾는 이유,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여자들의 보편적인 정서일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나와도 닮아 있었다.

 

눈에 띄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존재를 군중에 묻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는데

이는 혼자서 매장이나 푸드코트를 찾는 날 아주 불쑥불쑥 드러난다.

말하자면 옷을 고를 때 매장 점원의 눈길이나 관심은 받되 참견을 바라지 않는, 뭐 그런 심리다.

명품매장이나 수선실에 들어서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표정을 드러내는 것도 그렇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게 하는 이 두 종류의 자존심은 성질이 다르긴 하나

명품이나 헌 구두 앞에서 괜히 주눅들어 본 여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감정이다. 

 

실제로는 체력의 한계로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백화점 전 층을 돌아다니며 쇼핑한 느낌이다.

산 물건은 없어도 눈과 마음이 즐거워진 느낌+.+

덤으로 층 별로 작가가 언급해 놓은 작품들은

언젠가 백화점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읽어볼 만한 것들이다.

 

 

# <모든 문들을 이례적으로 활짝 열었다가

서로를 더 정확히 알아가던 나머지 만남들에선 열었던 문들을 착착착 차례로 닫아갔던,

그래도 작별인사는 할 걸 그랬다.(본문 중)>

- 그런가...  

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후회하는 일은

내가 작별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 조지 오웰은 자신이 서점에서 평생 일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그 일을 하는 동안 책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는 한 예술가의 말이 떠오른다.

... 참 슬픈 일이야. 책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다는 건.

 

# 저자가 강단에 섰을 때 첫 수업은 항상 이 주제로 했다고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들을 열거하기'

중고등학생 때 비밀일기를 쓸 때면 항상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있었는데

그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나열하기였다.

가볍게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써 보아도

막상 쭉 늘어놓고 보면 영락없이 내 취향과 생각, 성격이 다 드러난다.

일기장을 통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확인하는 것도 기분이 꽤 괜찮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를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