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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일주], 세스 스티븐슨

yurinamu 2011. 4. 18. 21:27

 

 

기차만으로, 자동차만으로 혹은 트랙터만으로 여행한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았다.

여행지에서 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구간에도 나름의 컨셉을 두는 것이 신선해보였다.

하지만 저자는 기차나 자동차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느낌의;;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다.

가능할까 싶었지만 150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미국에 돌아왔고 보란듯이 이렇게 책도 펴냈다.

 

그는 오히려 미래에 언젠가 사람들이 하게 될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환경이나 비용을 고려해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이 줄고 있고 배가 그 대안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재현자이자 개척자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이 꽤 그럴듯해 보이지만

배멀미와 시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별로 고려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말도 안 통하는 나라의 화물선 한 구석에 몸을 싣고 바다를 건널 때는 나조차 갑갑한 느낌이었다-

 

 

여행일정과 에피소드를 따라가며 느낀 것 하나는,

저자가 현지의 문화를 참 잘 흡수한다는 것이었다.

음식이나 고유한 풍습, 심지어는 행정 체계까지도 받아들이는 면모를 보였다.

 

그는 보폭이 크고 야무지지 못한 북미식 걸음걸이에 대해 지적한 것이 재미있다.

자국에서는 커다란 나라에 몸을 퍼뜨릴 공간이 많기 때문에 사지를 제멋대로 흐느적거리게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절도있게 각잡힌 유럽인들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며 뿌듯해했을 표정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물론 그 나라의 문화에 기꺼이 순응하게만 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다니면 그렇지만, 늘 항상 돌발상황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연이어 터진다.

그 가운데 복잡한 감정들을 다스리며 고작 우주의 점 하나인 듯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단순하지만, 단기간에 온갖 부정적 감정들로 나를 한뼘 자라게 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여행의 진리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를 거치지 않고 간 데다 중간중간 한국인의 기질만을 설명한것이

못내 아쉽지만... 배로 전세계를 일주했다는 것 자체가 책 제목만큼이나 눈물겹다.

또 그 용기가 부럽다.

 

<...사회적으로 승인받은 쳇바퀴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중략)

그 높은 담장 안에 모여 앉아 육아나 담보대출 따위를 고민하기는 싫었다.

우리는 담장 꼭대기로 기어올라가 먼지를 탈탈 털고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얼른 딴 데로 가고 싶었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