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밌는 건축이야기에 푹 빠졌다.
저자가 이미 서문에서 밝혔듯 언론인들이 가장 대화하기 어려운 직업인으로 건축가를 꼽았다고 한다.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는 물론이거니와 철학, 역사, 예술 등 전반적인 분야를 아우르는 지식과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일거다.
내게도 건축관련서는 모 아니면 도라는 인식이 있다. 전공서이거나 관광책자로 나뉠만큼 그 경계가 뚜렷해
여간한 지식으로는 범접하기 어렵거나 차라리 여행서를 보는 게 낫겠다는, 두 가지 감상으로 나뉜다.
저자가 소개한 건축물과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무난한 수준인 듯하다.
들어봤거나 가봤던 곳이라면 귀에 쏙쏙 잘 들릴 정도로 반가울 것이고
낯설지만 끌린다면 다음 여행과 지식 고양을 위해 차분히 들어둘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주변 건물들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외관도 멋지지만 디테일조차 감동적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시 50분에 5분간 낮은 주파수의 진동음을 발산한다고 한다.
아주 미세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는데, 이것도 건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다.
낯선 모양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오감으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이 곳-
디자인과 장치가 결합된 복합예술을 보는 듯 하다.
http://www.museum-joanneum.at/en/kunsthaus
자연채광, 자연채광, 너무 좋아하는데 여기에도 그 요소가 있다.
벌레 몸통에 난 촉수처럼 요상하게 생긴 창을 통해 그 효과를 배가시켰다.
건물 내부에서 촉수는 바깥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망원경 역할을 한다.
동시에 유리 너머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활용해 내부 전시에 활용하는 것이다.
<파리 베르시 빌라주>
M 14. Cour St-Emilion역에 있는 베르시 빌라주.
루이 14세 때 처음 창고가 들어서며 19세기부터 와인저장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호황을 누리며 전 세계의 와인을 실어 날랐다는 이 곳은
지금 마을과 공원이 조성되면서 새로운 상업시설로 변모하고 있다.
쇠퇴한 산업지역을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도 놀랍지만 그 방법이 더 신선하다.
옛날 와인창고의 모습 그대로를 활용함으로써
갈수록 반딱반딱 '모던'해지는 여느 재개발 지역과는 다른,
어느 곳도 흉내낼 수 없는 색다른 매력을 뽐내게 되었다.
오크통과 잘 어울리는 돌 건물들이 쪼로록 줄지어 있는 단정한 모습이지만
역사와 문화가 담긴 건축이란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게다가 그 역사와 문화가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것:)
<영국 코번트리 대성당>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무너졌던 코번트리 대성당.
성당 재건축을 위한 공모전에서 건축가 스펜스가 제안한 디자인이라 한다.
무너져 페허가 된 건물 옆에 새 성당을 지어 두 개를 통합하는 양식이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20세기 역사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은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다.
폭격 당시 한 신부님이 잔해더미에서 그을린 나무조각을 엮어 만든 십자가,
스펜스가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당에 사용하지 않았던 유리벽 디자인이
참 절묘하게 어울린다.
http://www.coventrycathedral.org.uk/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의 경우에서도 보았지만
유럽의 건축양식에 건축가의 사상이나 의도가 참 많이 반영되는 것 같다.
지금 봐도 새롭고 놀라운 디자인을, 당시에는 어떻게 선보이고 인정받았을까 하고 감탄하게 된다.
작가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위대한 건축물을 탄생시키는 배경인 듯 하다.
<리스본 오리엔테 기차역>
기차역 다리 밑에서 찍은 사진은 정말 야자수 숲에 있는 듯 했다.
에펠탑이 별로 낭만적이라 생각지 않는 나로서도
철골 구조물이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무수한 야자수 가지와 잎이 천정을 만들어 떠받치고 있는 느낌이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가우디가 건축한 나뭇가지 기둥같다+.+
http://en.wikipedia.org/wiki/Gare_do_Oriente
더욱이 맘에 드는 것은 지하에 위치한 서점*.*
터미널이라는 공공시설의 기능도 고려한 동시에
기차역이 주는 낭만, 설렘 등의 느낌을 책과 연결해 재치있는 공간활용을 보여준 것이다.
기술과 감성이 잘 어우러진 공간이 아닐까 싶다.
<빈,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그의 집을 보고 '건축이 알록달록 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외관상으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훈데르트바서하우스 내 52가구 중 같은 집은 하나도 없단다.
완공 후 그는 거주자들에게 손닿는 곳은 어디든 자유롭게 장식해도 좋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단다. 훈데르트바서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미완성인듯 하면서도 완벽한 이 예술품에 감히 손을 댈 수 없었을 거다.
매일 이런 집 안에, 아니 예술품 안에 사는 느낌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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