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버스를 타고 가다 유리창을 보았다.
뿌옇게 흐린 유리창- 한치 앞도 안 보인다.
저 밖은 어떤 모습일까, 무엇이 지나갈까 답답하다.
장갑 낀 손으로 쓱 쓸어보니 아주 잘 보인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저 사람의 마음은 왜 안 보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닦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2. 어느 날 내 눈에 들어 온 사무실 풍경,
5년 후 나의 모습은 옆 자리에 앉은 몇년 차 선배일까
10년 후 내 모습은 저만치 앞 자리의 과장님일까
20년 후 내 모습은 멀찍이 떨어진 부장님일까
빤히 보이는 미래가 돌연 두려워졌다.
잘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와 돌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떠나는 사람들을 이해할 것 같다.
#3. 저녁 늦게까지 눈을 보러 나가 계신 어머니를 저자가 걱정하자
스치듯 하신 말씀이 자꾸만 머리에 맴돈다.
"엄마가 백 살까지 살아도
앞으로 눈 볼 날이 채 50번도 안 남은 건데
아까워서 어떻게 집에만 있니."
연이은 폭설과 추위소식에 움츠렸던 것이
앞으로 '고작' 몇 십번 겪게 될 겨울 중 하나라 생각하니 아깝다.
언젠가 박진영씨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미국 생활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부지런함은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셨다는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 같았다.
학생 때에도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으면
"이 세상 뜨면 실컷 잘텐데 왜 자니" 하셨단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 아까워하니
참 귀중한 것이 많다.
책 말미에 나오는 구절이 인상깊다.
'인생은 두루마리 휴지 같은거야.
처음엔 이걸 다 언제 쓰나 싶지만
중간을 넘어가면 언제 이렇게 줄었나 싶게 빨리 지나가지.'
#4. 계속되는 우연, 자연스런 만남.
운명 같았고 정말 내 인연 같았던 사람.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은 내 곁에 없다.
그렇다면 그 사람과 나는 인연이었던 걸까, 아니었던 걸까?
어떡해서든 만나지게 되는 것이 인연이라는데
그 인연이란 것에도 끝은 존재하는 걸까? (본문 중)
#5. 사삭사삭 소리를 내며 글을 쓰는, 아니 써지는 즐거움-
원고지 위에 번호 매길 새도 없이 쓱쓱 써지던 때
연필 자리가 눌려 원상복귀 되지않는 중지손가락을 보며 묘한 희열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컴퓨터 스크린에 대고 곧바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이후로
사뭇 다른 종류의 희열을 맛보게 되었다.
저자도 그랬듯
글을 쓴 뒤 갓 뽑아져 나온 A4용지에서 느껴지는 그 따뜻함.
내 머릿 속에서 갓 태어난 글의 체온을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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