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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yurinamu 2010. 12. 30. 22:19

 

 

 

일본 기업에 취직한 벨기에인 견습사원 아멜리의 이야기다.

하지만 저자의 이 자전적 소설은 외국인의 취업 이야기라고 해서 으레 떠올릴 수 있는 소통의 어려움,

혹은 기업문화에 대한 단순한 적응 차원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었다. 

체면과 명예를 아주아주 소중히 하는 일본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의 특성이 사무실 한 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자동복사기능을 지양하고 100% 수동복사 결과물을 알아볼 수 있는 신기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상사,

논리가 담긴 의견 표출이나 머리 쓴 흔적이 엿보이는 능력 발휘는 곧 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상사,

감정을 들켜 수치스러운 불명예를 느끼게 해준 한갓 신입사원에게 화장실 비품 정리로 복수하는 상사,

 

실제 있을 법 하면서도 너무 하다 싶은 코믹한 이야기들이

참 슬프다.

 

 

# 덴시는 '천사'라는 뜻이다. 나는 덴시 씨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기회를 준 것에 그치지 않고, 아무 지시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완전히 재량껏 해보라고 한 셈인데. 이런 일은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건 그에게 크나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 초짜에겐 버거울 것 같은 큰 업무를 덜컥 맡기는 상사가 있다. 

처음엔 과연 내 재량이 도움이 되긴 하는 걸까 걱정스럽다가도 이내 막중한 책임감과 열의가 불끈불끈 생긴다.

나를 믿어주었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어이없는 실수로 일을 그르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능력의 120%를 발휘한다.

다행히 결과가 좋을 땐 상사에게 신임도 얻고 나도 그 상사를 더 존경하게 된다.

그 상사로서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입의 능력에 올인하는 모험을 한 셈이니까.

쉽지 않지만 리더가 갖추고 있다면 더 빛나보이는 자질 중 하나다.

 

 

# 나는 며칠을 통째로 글자와 숫자를 다시 베껴 쓰는 데 보냈다.

내 뇌가 평생동안 지금처럼 회전요청을 거의 받지 않은 적도 없었다.

회계 장부로 하는 선(禪) 수련이었다. 문득, 이렇게 달치근하니 넋을 놓고 40년 생을 보내야 한다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차와 커피를 끓이면서 얼마나 행복에 겨워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가련한 머리통에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 이 단순한 동작들을 하는 동안 영혼이 다시 기워졌다.

- 언젠가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껴본 영혼 짜깁기ㅋ

기계에 버금가는 신체적 능력이 내게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넋을 놓고 일한다는 것(아니, 그냥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이 그토록 평화로운 일인 줄 몰랐는데^^;;

하지만 다행히도 그것을 쭈욱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 나는 경리 업무의 시지포스였다.

그 신화 속의 주인공처럼 나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 모진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번번이 계산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나는 신이 내린 능력을 타고났다.

 

 

# 일본 문화에서 작명 말고 다른 여러 예를 통해서도 물론 나타나는 이 이상야릇한 측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꿈꿀 권리가 없는 여성들이. 후부키 같이 꿈꾸게 하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은 여자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는 오묘하기 그지없는 시적 표현까지 쓰곤 한다.

반대로 남자아이의 이름을 짓는 경우, 고유 명사를 만들어 놓은 걸 보면 대부분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웃음이 나온다.

- '문화에 대한 이해'도 글을 쓰는데 꼭 필요한 것임을 일깨워준 대목.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녹아있는 표현이 한층 진정성 있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