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Camino de Santiago-del Norte

#0. 떠날 준비

yurinamu 2010. 10. 13. 18:37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글부터 옮겨야지 했는데

막상 쓰려니 온갖 기억들이 뒤엉켜 어느 가닥부터 풀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

게시판을 열어놓고도 며칠동안 선뜻 손대지 못했던 이유다.

 

    우연이 겹쳐 이 길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아니 머지 않아 가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졸업을 하고 그래도 나름 가고 싶었던 두 곳에 달랑 원서를 낸 뒤 말그대로 책에만 파묻혀 지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기를 하다 뚝 멈춰버린,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은 마라토너 같았다.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데 그 도전의 대상이란 것이 눈 앞에 빤히 보이는 직장길이고..

도무지 의욕이란게 나지 않았던 거다.

 

동시에 까미노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져갈 때쯤

"어디 좀 다녀올래?" 엄마의 한 마디에 불쑥 대답해버렸다.

"가고 싶은데 딱 한 군데 있어"

 

8월 16일 출발하는 항공권을 끊고

단기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자리도 몇 잡았다.

요가도 하고 매일 공원을 두 바퀴씩 돌며 체력다지기에도 신경썼다. 

난생 처음 사보는 배낭, 등산화, 옷까지-

 

그런데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예상치 못한 고민이 생겼다.

처음부터 당연하게 여겼던 출발점이, 가고자 했던 그 길이 뭔가 석연치 않았다.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과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들려왔다. 

'길 잃을 염려도 없구요, 지형도 평탄한 편이죠.'

'사람 굉장히 많아요. 특히 올해는 성년이라...'

종교적인 순례도 아니고 그렇다고 등산가는 것도 아닌데,

조용히 나에게 시간을 주자는 건데, 

거기가 북적거리는 길이라면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 다른 길을 택하자.'

 

Paris- Bayonne- St.Jean Pied de Port 로 찍힌 TGV표는 그대로 두고

Bayonne-Irun까지 표를 추가로 끊었다.

바욘-생장 구간을 취소할 수 있는지는 파리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밤기찬데 새벽에 차 갈아타지 않아도 되니 이것도 썩 괜찮아 보였다.

(* 원래 Paris-Irun행 열차이고 바욘에서 생장행과 이룬행으로 분리되는지 이때 알았다.

그냥 타고 있으면 북쪽길, 갈아타면 프랑스길로 가는 셈이다.) 

 

여전히 두 장의 표를 쥔 채 북쪽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프란세스길보다 덜 알려진 곳이라 알베르게 정보도 다녀온 사람들의 수기 몇 편에 의존해야 했다.

스페인어로만 된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어렵게 긁어 모은 정보를 들여다봐도 막막하긴 마찬가지.

그런데 그렇게 부족한 게 많을수록 이제 좀 까미노를 준비하는 느낌이 들었다.

 

'길이야 어디든 있겠지. 모르면 물어서 가지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북부 해안길을 따라 쭉 걸어간다. 그것도 산티아고까지.

다시 생각해도 여기가 더 마음에 든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렇게 겁없이 발을 내딛었다.

Camino de Norte로.

 

 

- 2010년 8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