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덮고 나니 저자가 버마를 왜 '금지된 자유의 땅'으로 소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미얀마를 왜 버마라고 일컫는지조차 생소했다. 내가 알고 있는 미얀마라는 나라 이름은, 1989년 국민의 동의없이 군사정부에서 바꾼 국호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UN이 채택한 공식국가명이긴 하나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에서는 현재까지 옛 국가명인 버마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책 제목과 소개만 보고 NGO단체 소속인 사회운동가가 쓴 실태보고서 정도의 인문서인줄 알았다. 책을 펼쳤더니 만.화.다.;;;;;;
2002년 북한을 방문하고 <평양>을 출판했다던 그 퀘벡인 작가가 바로 이 사람, 기 들릴이었다. 부인도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니 이 부부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됐다.
- 낯선 곳에 가면 '이국적이야!'라고 느끼는 대표적인 곳이 슈퍼마켓(또는 시장)이라 생각했는데 저자도 그랬나보다. 기 들릴의 말마따나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필수품들이 밀집해있는 슈퍼마켓은 관광객이 놓치기 쉬운 한 나라의 문화적 단면을 보여준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을 기웃거리며 최대한 많은 것을 눈에 넣는다. 과일의 진열형태, 신기하게 생긴 조리기구의 용도, 현지어로만 써있는 과자의 정체...하다못해 비닐백의 디자인 하나까지 신기한 법이다.
- 버마는 여름과 엄청 더운 여름, 그리고 우기가 있다. 동남아에서 처음 24시간 사우나 하는 찝찝한 기분에 괜히 아프고 우울했던 적이 있다. 27도만 넘어가도 에어컨을 24시간 켜 놓는 나 때문에 전기가 끊기는 일이 부지기수였지만, 어느 날 에어컨을 켜기 시작한 온도가 32도였을 때 깜짝 놀랐다. 인간의 적응력은 참 놀랍다.
- 현대식 주택은 공기 순환이 어려워 열대기후에 맞지 않는다지만 요즘은 이런 걸 선호하나보다. 좁고 통풍 안 되고 습한데다 내부에 계단이 빙빙 둘러있다. 그 와중에 두 층 사이에 거실이 있는 것을 보았다니 의아할 만하다. '미치광이 건축가가 공간을 분할한 듯'하다는 저자의 분노에 한참을 웃으며 한편으로는 공감했다.
- 두꺼비가 천정에서 뚝 떨어져 식겁한 주인공 모습에 또 한번 웃었다. 집에 침입한 것도 왠만해야 잡는다. 매미만한 바퀴벌레나 한 뼘길이 도마뱀, 털난 왕거미에게 고작 '멀미'정도의 효력을 보일 것 같은 살충제를 들고 덤비는 것은 무리다. 사후처리가 더 고역이기 때문이다.
- 군사정부인만큼 언론에 대한 검열이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외신, 지역신문까지 검열대상이었다. 비판적인 기사를 회색 잉크로 지우는 수준이 아닌 페이지를 통째로 잘라내, 배달된 타임지가 몇 페이지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광고주들이 광고 뒷편에 실릴 기사에 노심초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저자가 구멍이 뻥뻥 난 신문을 들고 '기사를 찾는 중이야.'라는 모습이 퍽 인상깊었다.
저자가 1년 넘게 그 곳에 지내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아이를 키우는 잔잔한 일상에서부터 작품 활동을 하고, NGO 활동 현장에 동행하면서 느낀 점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덕분에 현재 버마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얀마보다 버마가 더 가깝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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