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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yurinamu 2011. 3. 7. 23:13

 

 

한참 전 서점에서 발견하고 사 두었던 책인데 이제서야 들게 되었다.

저자는 유엔의 식량특별조사관 장 지글러다.

표지 제목과 저자의 직업만을 보면 이 글은 2020년 세계식량대책보고서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빈민국의 굶주린 아이들 사진을 보고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듯한 의문을 던진다.

'왜 이렇게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은가' '식량문제는 왜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못하는가'

다소 심각한 화두인 식량난과 기아의 진실에 대해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체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특히 식량 문제가 돈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네슬레 사건(?)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소아과의사 출신인 칠레 대통령 아옌데가 자국의 어린이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반발에 부딪혔지만 기근으로 인한 유아사망률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다국적 기업 네슬레와 손을 맞잡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네슬레가 1971년 이 협력 제안을 거부했다. 성공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 미칠 영향도 있었고

이 사회주의적 개혁정책을 우려한 미국 정부의 개입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식량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구조적 기아문제가 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먹는 유기농 식품들의 원산지를 살펴보면

이는 비단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만 일어나는 먼나라 얘기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저자는 우리가 참극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설치된, 서방언론의 카메라에 비친 모습만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난민캠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백신이나 간단한 소독약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례도 안타까웠지만

병동에서 선택적으로 살아남을 기회를 받는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생명을 부지할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을 '선별'해 치료하다니..

굶어죽는 아이들이 땅에 묻히고 부모 가슴에 묻히는 것을 본 저자는 이를 '어린이 무덤'이라 표현했다.

가난한 환경에 태어난 죄로 태어나면서부터나 저 세상으로 되돌아갈때나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기아가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자연적 현상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18세기 말 영국의 성직자 맬서스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인구증가대비 식량증가율이 떨어지므로 자발적인 산아제한을 위해 사회적 지원이 중단되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한마디로 불가피한 자연도태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는 이 이론이 지금까지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저자는 이 이론과 현상을 심리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양심의 가책을 애써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 앞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데 동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전세계 옥수수 수확량의 1/4이 소들의 몫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이는 캘리포니아의 사육시설 절반 크기에서 연간 소비되는 옥수수 양이

옥수수가 주식이면서 만성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많다는 뜻이다.

전통 낙농법이 아닌 곡물 사료를 먹여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 식량 부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한편으로 농산물 가격을 둘러싼 각국 금융시장의 움직임도 하나의 요인으로 들었다.

경제원리를 들어, 가령 유럽은 식량이 남더라도 자국의 농산물 가격 유지와 분배를 위해 폐기처분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부자들의 쓰레기조차 받지 못하는 빈국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더 혼란스러웠다.

 

국제기구인 FAO에서조차 기아 실태를 장밋빛 전망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낙관적인 여론을 이끌어내야만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설명에 숨이 턱 막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희망적으로 내려진 기아인구수분석과 기아대책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복잡한 경제 질서와 얽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연일 전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뉴스로 우리의 눈은 모두 전쟁, 테러, 환경 파괴 등에 쏠려있다.

간간이 현대판 보릿고개를 우려하는 보도에 잠깐 눈길을 줄 뿐이다.

나도 저자말마따나 그야말로 낭만적인 분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국제기구의 추가적인 지원과

남으면 퍼 주는 식의 단순한 분배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니 

더욱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