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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하우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yurinamu 2010. 4. 3. 17:57

 

 

서점에서 우연히 책장을 들췄는데 순간 멈칫했다.

중간중간 굵은 고딕체로 쓰인 단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비누, 치약, 카펫, 바지, 향수, 전자레인지, 커피, 진공청소기 등등..

 

시계가 거의 2바퀴를 돌 때까지

그러니까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단, 여기서의 '모든 일'은 거의 사람이 아닌 미생물과 세균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점보다 훨씬 작은 미생물이 되어 수천만배의 돋보기를 들고 집안을 탐험한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작가는 언젠가 머물게 된 프랑스 시골집에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4층이 각각 다른 느낌을 주는 구조였는데 거기서 문득,

'요즘의 주택은 어떤 세계를 포함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평범한 어느 하루동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의문을 갖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작지만 위대한 발견이다.

 

자칫 지루할 것 같지만 과학적 원리, 구체적인 묘사가 곁들여져 상당히 흥미롭다.

 

이 책에서 충격적인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이는 집먼지진드기와 치약을 제외하면 주로 음식에 관한 것들이다.

 

가령, 신 우유와 동물성 지방으로 이루어진 회색 덩어리에 비누와 전분을 섞은 것. 마가린이다.

저자 말마따나 이런 물질을 먹을 만한 것으로 탈바꿈시키려면 천재적인 가공이 필요하다.

아무런 영양분이 없다는 최대 단점을 비타민으로 커버하고,

제품에 자연을 암시하는 그림을 그려넣기 위한 장치로 간혹 미량의 해바라기유을 첨가한다니 놀랍다.

물론 성분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한 면도 있겠지만 어쨌든 원료는 같다는 것이다.

 

감자칩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걸 보니 감자칩의 포장과 모양이 왜 반드시 그래야만 했는지 알것 같다.

봉지를 뜯을 때마다 씨름해야 하는 것은 제조사들의 안목이 짧았던 탓이라거나 밀폐과정을 담당한 공장 품질관리자의 열의가 지나쳤던 탓이 아니다. 감자칩은 처음부터 끝까지 난폭한 음식이다. 고유의 바삭함은 입보다 귀가 먼저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공기를 감자세포 속에 압축해 80%가량을 채우고 한 입 크기보다는 크게 만들어 바삭 부서지는 소리를 귀로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감자칩 봉지가 그토록 빵빵하고 질긴 것도 애써 살린 모양과 식감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비단 먹는 것 뿐만이 아니다.

19세기 미국에서 당구공을 만들 상아 대체재로 니트로셀룰로오스  합성수지를 개발한다. 하지만 개발자인 존 웨슬리 하이야트는, 한 술집 주인으로부터 새 당구공이 세게 부딪칠 때마다 번쩍하고 섬광이 일어 술집안의 사람들이 죄다 총을 꺼내들어 경기가 자꾸 지연된다는 편지를 받았단다. 폭발성이 있는 화학 물질이었는데 이것이 개량되어 플라스틱 산업의 초석이 되었고 현재는 매니큐어에 들어간다고 한다. 굉장히 묽은 상태라 폭발할 위험이 없다지만 매끄러운 손톱에 염료를 찰싹 달라붙게 하는 위력을 보면 그닥 가까이 하고 싶은 물질은 아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본 그 덕분에 재밌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집먼지진드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테니 말이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집 안의 모든 것들이 지저분하게 보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