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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st.grapher

yurinamu 2016. 1. 30. 06:22


dust. 먼지

-grapher. 쓰는 사람, 그리는 사람, 기록자



#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LE BAL 에 다녀왔다. 

이달 말일 끝나는 전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꾸역꾸역 18구로 올라가야 했다.

우연히 알게 된 전시공간이지만 이름이.. 왜 이런가 했더니 예전에 이름 그대로 무도회장이었던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2년까지 PMU로 이용되다가 버려졌던 사연많은 이 공간은

2006년에 들어서야 파리 시의 도시계획 프로젝트로 인해 지금과 같은 전시공간으로 부활했다. 

Au terme d'un concours ayant réuni les projets de dix architectes, la transformation architecturale du BAL a été confiée à deux jeunes architectes, Caroline Barat et Thomas Dubuisson. (Histoire du lieu du BAL, http://www.le-bal.fr/histoire-du-lieu


"LE BAL est un espace d'exposition, de réflexion et de pédagogie dédié à l'image-document sous toutes ses formes (photographie, vidéo, cinéma,...)"

위의 짤막한 소개 한 줄을 보고 당장 가야겠다 생각한 곳이었기에 

이 곳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고, 그만큼 기대가 컸다.


이번 전시 제목은 DUST: Histoires de poussière d'après Man Ray et Marcel Duchamp

먼지라는 주제가 참신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전시 포스터의 Man Ray 사진을 직접 보고 싶었다. 

Man Ray외에도 John Divola, Sophie Ristelhueber, Walker Evans, Gerhard Richter, Jeff Wall 등등의 작품 150여 점이 전시되었다.

먼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티끌은 어디에서 온 걸까?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폐허가 된 전쟁터와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마을, 나무더미와 돌덩이가 산을 이루는 현장 모두에 먼지가 자욱하다.

시간이 흘렀어도 풍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을 뿐 먼지는 영원처럼 그 곳에 있다. 

비행기 조종사가 찍은 땅 위의 사진이나 지금의 구글 위성사진에서도 

멋진 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풀 한 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 황무지에서도 

저 멀리 보이는 먼지는 영원처럼 시간을 담고 부유한다. 


작품 사진으로서 

먼 레이와 마르셀 뒤샹의 Dust Breeding(Élevage de poussière )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존 디볼라의 Vandalism에서는 예술의 창조-파괴-재창조의 순환고리가 보이는 것 같아 한참을 그 앞에 머물러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아이러니지만 돌고 도는 창조(création)의 순환구조가 먼지의 역사와 퍽 닮아 있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하 전시장에는 사람이 없어 혼자 작품을 보고 있는데

한 쪽 구석에서 계속 쓱쓱 소리가 난다. 

직원인지 médiateur인지 한 남자가 계속 빗자루질을 하는 거다.

바닥에 보이는 먼지도 별로 없는데 그렇게 쓴다.

작품을 좀 보려 하면 내 주변을 맴돌면서 계속 쓴다...

이건 뭐지. 바닥을 더럽히지 말라는 무언의 항의인가. 

분명 비오는 날도 아니고 부츠도 깨끗한데. 이건 뭔가.

아님 빗질로 행위예술하는건가.

먼지가 주제니 작품과 하나 되겠다는 의미의 퍼포먼스인가.

쫓아다니며 계속 쓰는데 웃음이 났다. 

0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데 또 앞장서서 쓸고 또 쓸고ㅋㅋ

전시를 다 보고 boutique로 나와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caisse옆 쪽에 비와 쓰레받이를 가지런히 둔다.

결론은 그냥 청소인 걸로.

내가 본 청소 중 가장 참 인상깊고 예술적인 청소였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dust.grap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