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하고 잔뜩 찌푸렸던 긴긴 겨울이었다.
비도 많이 오고 우박도 심심찮게 왔다.
돌풍에 우산도 벌써 4번이나 바꿨다.
남은 것 마저도 손잡이가 깨지고 살이 휘었다.
험난한 시기가 지나고
모두 깨어나는 시기가 왔음을 피부로 느낀다.
어제는 몇 달만에 처음으로 테라스 문을 열었다.
겨울엔 날씨가 맑아도 습해서 빨래를 내놓지 못했었는데
모처럼 든 햇살에 '아직은 좀 이른가' 싶으면서도 건조대를 밖에 내었다.
한결 가벼워진 공기와 꽃내음이 얼굴에 확 와닿았다.
아직은 습기를 머금은 나무 냄새도 난다.
그래도 마르지 않으면 하루 더 내놓기로 하고
햇빛이 아른아른거리는 테라스를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겨우내 감춰뒀던 걸 한꺼번에 뿜어내기라도 하듯
햇살이 무척이나 찬란하다.
세상이 온통 이런 빛깔이었나.
이렇게나 다양한 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하늘, 꽃, 풀, 그리고 건물 담벼락까지
각기 제가 가진 색깔을 찾는 계절이다.
맑게 개인 날이면 사람들 표정도 다르다.
특유의 못마땅한 표정에 잔뜩 찌푸린 인상이
햇살 좋은 날엔 사악 걷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상점의 주인들도, 레스토랑 직원들도
너나할것 없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인사하는 목소리도 한결 밝다.
처음엔 화창한 날씨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다.
오랜만에 햇빛이 든 어느 겨울날,
주택가를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한껏 멋을 부린 두 마담이 집에서 나왔다.
"Oooh!! Quel temps magnifique!!"
연극 대사 하시는 줄 알았다.
커튼을 열어 제치듯 양 팔을 크게 벌리며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뜬 듯 허공을 응시했다.
입에는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그렇게 간절했던 햇빛이 나오는 날엔 모두 밖으로 나온다.
쏟아져 나온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니, 스물스물 기어나오는건가-
지금은 나도 대사를 안 할 뿐이지
표정은 그 때 그 마담과 마찬가지일거다.
조증이 의심될 정도로
맑은 날엔 기분이 굉장히 좋다.
햇살조증증세가 집단으로 번진 그 날,
세미나를 마치고 친구들과 무작정 걸었다.
Jardin des plantes
Jardin de Luxembourg
지금 사는 곳이 아니라면 이 근처로 이사가고 싶어했을 정도로
너무 좋아한다. 뤽상부르 공원.
지난 겨울엔 수업 시작할 즈음부터 달이 떠있었는데.
이젠 수업 끝나고 나와도 환하니 좋다.
Place de la Sorbonne